사랑은 국경을 허물었지만, 뿌린 씨앗은  철조망에 걸려 반세기...

  

 

 

   파월시.. 김종병 한국병사            결혼식을 올리는 두사람                       다정하게 손잡은 신부와신랑
                     

                    "라이따이한 김소희에게 박수를"

    김종병전우의 사연 / 이모두가 사상전쟁 때문이었다. 작은 소녀 소희는 아빠찾아 3만리를 헤맨끝에 꿈에  그리던  따이한 아빠를 찾고야 말았다.  생후 15개월째 아빠는 어디론지 훌쩍 떠나 버렸다

  베트남 엄마와 따이한 아빠 사이에 태어난 소희는 차츰 자라면서 엄마가 보여주는 4장의 사진속에 늠름하  게 서있는 아빠의 모습을보고 또 보고 자꾸만 보면서 머리속에 각인시겼다. 5남매의 형제들을 키우며 무진  고생을하는 엄  마를 보면 가슴이 미어졌다.


   17살 나이로 68년에 따이한 아빠와 결혼한 엄마 (응우 엔 티홍) 여인은 74년 아빠 김종병이 떠날때 까지 거  의 년년  생으로 다섯자녀를 생산하여 올망졸망한 3남 2녀를 키우며 생을 이어갔다. 식당에서 허드렛 일을하  며 버는 적은  수입으로는 여섯식구의 생계를 지탱하기 어려웠다.


    먹을거리가 떨어졌을때는 산에 올라가 "까오" (나무밑둥에 열리는 고구마같은 열매 월남산 고구마 -)를 캐  다가  연명하기도 했다고 한다. 소희는 이러한 엄마의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크면 꼭 아빠를 찾아  야지" 이렇게  결의를 다지곤 했다. '엄마' "아빠는 나쁜 사람이야! 우리를 버리고 가 버렸어" 소녀의 마음은  아빠에 대한 그리움  과 함께 미워지기도 했다.

   소희가 아빠를 원망할 때면 엄마는 "아니야 . 아빠는 나쁜 사람이 아니란다. 아빠는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았어.


       이곳을 떠난 것은 우리를 더 잘 살게 하려고 외국으로 가신거야.
  이것은 모두 전쟁 때문이란다" 하며 소희를 다독거렸다. 그리고 사진을 꺼내보이고 아빠가 남기고 간 고향   주소를  적은 쪽지까지 내놓고 위로했다.


     아빠는 자신의 형제들을 아빠의 나라 호적에 모두 올려놓았다는 말도 해주었다.그랬었다.
   그 아빠는 자식을 다섯씩이나 낳아놓고 도망친 뺑솔이가 아니였다.
    " 따이한 소희의 아버지 / 김종병 ... 그는 누구인가"


   1966년 9월 16일 월남땅에 첫발을 디딘 김종병하사는 중부 월남 캄란지역에 주둔한 백마부대 
   제30연대 작전과에 배치되어 당시 흔치않은 영문타자병으로 중요임무를 수행했었다
고향이 전남 나주인 김하사는 사회에서도 군에서도 모범적인 청년이었다.
키도 휜칠하고 미남형인 그는 가끔 부대앞 마을에서 외출하는 기회에 베트남 소녀
'응우 엔 티홍' 양을 만나 사귀게 되었다.
그들의 운명인지.전생의 연분인지 몰라도 서로의 정이 깊어지면서 응우양은 아이를 갖게되고
68년 11월에 출산을 하게된다(아들 김기남). 이 사건(?)은 장근환연대장에게까지 보고 되었다. 해가 바뀌면서 연대장이 바뀌었다. 현재 본회 부회장인 양창식대령이 새 연대장으로 부임한
것이다. 양창식연대장은 부임하자마자 부대현황도 파확하기전에 대부대 작전지시로 받는다.
침착하고 슬기로운 양창식부대장은 초임의 어려움 속에서도 무난히 성공적으로 참전을 수행
하고 부대로 귀환하여 골치거리인 김하사와 베트남 여인과의 사연 문제를 합리적으로
처리해야 겠다고 방침을 세운다. 일이 이렇게 된바에는 한·월 친선의 기회로 삼자고 생각한
양창식연대장은 부대장병의 축복속에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려주기로 했다. 이참에 지역의 월남 유지들과 주민까지 초청하여 번듯한 국제결혼식을 처러 주었던 것이다.
이로써 김종병하사는 그리고 그 이듬해 제대하여 현지 취업 다낭의 대한통운에 근무하며 다섯
  자녀를 낳게되었다. 그런데 월남전을 종결시키기 위한 파리협상이 타결되어 외국군이 철수하게되자 
  김종병전우는 일자리가 없어져 사이공으로 이주하였으나 앞길이막막하기만 했다.
  김종병전우는 가족을 데리고 한국으로의 귀국하기로 준비를 서두렸는데 그곳에서 살길을 
  찾기를 희망했으므로 어머니와 3남 2녀를 남겨주고 호주국 시드니로가서 취업하여2~3개월마다
  사이공에 남겨둔 가족의 생활비를 보냈다.
 
  (자녀에 대한 출생및 호적신고는 이미 사이공 주월 한국대사관을 통하여 완료된 상태였었다)
그런데 어찌 알았으랴!. 순진한 가족들과 김종병 전우까지도 100만대군의 자유월남이
그토록 쉽게 무너져 공산화 될 줄은 몰랐었다.
 
     베트남이 온통 공산화 되자 외국과의 모든 연락이 두절되고 말았다.

                   15년 세월이 깜깜한 먹구름속에 흘러갔다.
91년 베트남의 문이 열린다는 소식은 들었으나 사이공으로의 접근은 불가능하였다.
마침 호주에서 이주일씨 등 코메디언들이 베트남돕기 자선공연이 열렸고 그 수익금의
5.000$이 베트남의 천주교 선교사 계통으로 송금되었다.
이중 1.000$은 김종병 가족에게 전달하도록 지정송금도 하였는데 그돈의 행방은 알수 없고
지금까지도 받지 못하였다는 것을 둘째딸 소희를 만나서야 알게 되었다.
"소희의 아빠찾기로 얘기를 돌린다"

   소희는 어느덧 자라서 20대가 되었고 한국기업의 베트남진출이 왕성해지면서 사이공에 진출한
  경일상사에 취직하여 3년동안 일하면서 그곳 책임자인 안정기부장과 친해졌다.
안정기부장은 소희양의 얘기를 듣고 한국의 피가 흐르고 있는 소희에게 신뢰감과 동포적 정을느껴
  잘 해주었고 소희양 또한 아버지의 나라의 업체와 부정(父情)을 그리는 마음이 아저씨와 같은
  안부장을 위해서나 업체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
소희는 똑똑하고 참한 아가씨다
글씨도 또박 또박 그린듯이 썼고 한글과 한국말을 잘 배워 불편없이 구사 하였다.
그런데 안부장이 사이공의 업체를 정리하고 귀국해 버렸다. 소희는 그대로 앉아 결딜수가 없었다. 아빠를 찾아 "한국으로 가자" 99년 단신으로 한국에 왔다 그러나 남대문 입납격으로 아빠를 찾을길이 없어 되돌아 갔고
2001년 2월 두번째로 한국에 와서 방송국 언론사 등을 찾아 호소하고 아빠를 찾기위해 헤메었으나
  허탕을 치고 돌아 가야만 했다.그러던 중 안정기 부장의 한국에서 제조업체를 차리고 소희양을
  불러 산업연수생으로 불러 드렸다.
소희양은 아빠의 주소로 수소문 끝에 아빠의 누님이 광주에 살고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안정기부장과 동행으로 광주로 달려갔다. 생전 처음보는 고모였다.
그것이 지난 10월말경 광주의 고모는 호주에 살고있는 동생 종병씨에게 연락하고 그사이에
서울에 살고있는 형제들에게 연락하여 이국 출신의 조카.사촌들과의상면을 하게되었다 김종병씨는 사정으로 당장 달려오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개인 사정으로 지난 11일에야
한국에 왔다.인천 국제공항에서 29년만의 부녀상봉의 극적인 해후가 이뤄졌다.
소희양은 베트남에서 장가가서 살림을 이루고 있는 큰오빠 기남씨와 엄마를 제외하고
언니 귀숙. 작은오빠 대성군. 본인. 남동생 대정수군 네 자매는 아버지의 나라 한국에와서
호적에 올라 있으나 김전우가 호주 국적으로 되어 있어서 자녀들의 한국주민으로서의
권리취득이 쉽지많은 아닌 모양이다. 그래서 전우회를 찾아 도움 요청을 하고 있다.
소희양은 아빠가 호주에서 또 결혼을 했다는 말을 듣자
"아빠 나빠 가족들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데..." 하고 구슬같은 눈물을 쭉 쭉 떨구었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보니 김종병전우가 결코 인정없는 도망자는 아닌것을 확인했다.
소희를 바라보는 눈길. 감싸안는 모습에서 진한 부정을 볼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종병전우의 경우는 매우 특수한 상황이었다 베트남에는 현재 약 300~400명 가량의 라이타이한이 있는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김종병전우와 같이
   현역 군인에 의해 생겨난 라이따이한은 10세대 내외에 불과하다.
당시 참전 현역들의 생활같은 것은 도저히 불가능 하였기 때문이다.
참전 당시 필립스.필코 등 외국회사에 취업했던 민간인 근로자는 숙식비로 150$을 지급받았고
 그돈으로 현지 여인들과의 계약결혼으로 생활한 경우가 대부분 이었는데 거기서 라이타이한이
 생겨난 것임을 밝혀둔다.

   
    현,베트남참전전우회 홍보실장이며 글 배 정 참전당시 정훈장교였슴

                                                                    

         김종병전우와 유화덕전우                       김종병전우가 딸과 상봉하는 장면                            상담하는 부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