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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근영
작성일 2013-01-21 (월)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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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사-류재문 1대대장전사 그리고 백마29연대1대대2중대의 고립(펌)




위 사진은 월남전때 백마28연대 5중대 나인환 소대장님이 보관한 사진 입니다.
포연이 피어 오르는 아래로 사이공 가는 철도와 1번 도로가 있는데
사진의 산아래쪽에는 하이손 기차역이 조그맣게 보입니다. 이곳은 1970년 3월경 28연대 5중대는
투이호아 북쪽으로 부대이동 했고, 그후에는 백마29연대 1대대 2중대가 인계받아 작전을 했습니다.



그런데 철수무렵 (정확히 휴전 하루전) 이곳 중대기지 앞 1번 도로상에 있던 다리가 폭파 되었다.
폭파된 다리를 확인하러 출동했던 백마29연대 1대대 :류재문" 1대대장등 6명이
이 부근에서 전사하였다. 세월이 흘러 베트남전적지 방문 기회가 있어서 그곳엘 갔는데
폭파된 목교(나무다리)는 기둥만 앙상하게 남아있고 그옆에 새로운 다리가 놓여져 있었다.



故 류재문 대대장의 묘비는 동작동 국립묘지 3묘역 상단에 세워져 있다.

당시의 기록을 참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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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대기 큰 바위로 유명한 "혼바산(Nui Hon Ba)"
아랫쪽 바닷가엔 부두가 있었는데 그곳을 "붕로만(Vung-Ro Bay)"이라고 불렀다.
투이호아(Tuy Hoa) 미군 비행장에 폭탄 및 군수품을 보급하는 중요한 곳이었고,
험준한 긴 산맥 끝자락 암석지대 천연요새라 베트공들이 득시글 거렸다.



백마28연대가 철군을 할려면 혼바산 고개를 넘는 1번도로 길 밖에는 없다.
당시 이 고개의 도로경계는 백마제29연대 제1대대가 담당하고 있었다.

휴전을 몇시간 앞둔 1973년 1월27일밤 23시경 제1대대 제2중대 지역에 있는
붕로만 고개 아래쪽의 목교(木橋) 2개소가 베트공에 의해 폭파되면서
교량을 경계하던 백마29연대 1대대 2중대 진지가 적에게 유린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귀국준비에 들떠 해이해져 있던 2중대 병사들은 날벼락을 맞은 꼴이었다.
아래 위 목교가 폭파되어 고립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베트공들의 포격이 시작되었다.

목교 폭파를 정찰 나왔던 제1대대장 류재문 중령을 비롯한 6명의 아군이
B-40 로켓포에 피격되어 전사하였다. 베트공의 치열한 사격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피습된 아군의 유해조차 회수할 수 없었다.

베트공을 제압하기 위해 포병화력이 지원되어 집중포격을 가했으나
천연바위 동굴 속에서 응사하고 있는 베트공을 제압하지 못했다.

1월 28일 08:00시 부로 평화협정이 발효됨에 따라 포격을 멈출 수 밖에 없었으며,
더 이상의 작전 및 전투도 금지되는 진퇴양난의 순간이었다.

백마 29연대장은 확성기를 장착한 APC로 베트공을 선무(宣撫)하도록 했다.
"아군의 시신만 회수되면 전투를 종료하고 즉각 철군한다."는 내용이었다.

교량폭파후 고립되어 공격받고있는 제2중대 철수작전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베트콩의 로켓포와 박격포 포격은 멈추지 않았다.





이승호 소령의 영웅적인 제2중대 구출작전
소속 : 십자성 제11야전 항공중대
장소 : 베트남 푸엔성 호아쑤언남계곡
일시 : 1973. 1. 29
구출대상 : 주월한국군 제29연대 제1대대 제2중대
내용 : 집중포화속 고립된 2중대병력 헬기구출작전.


휴전 이튿날인 1973년 1월 29일 아침 8시,
나트랑 북쪽 외곽에 위치한 십자성 군수사령부 소속 제11야전 항공중대는
평소처럼 운항 작전회의를 막 시작하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백마 제9사단장 명으로 작전지시가 하달되었다.

지금 즉시 운용 가능한 헬기를 최대로 동원하여 현재 베트공에 의해 포위,
고립되어 있는 아군 백마 29연대 1대대 2중대원들을 긴급 구출하라는 명령이었다.

실제 휴전발효는 어제였지만 약 1주일전부터 휴전시의 작전 준수 요강이
하달된 터여서 이에 의해 휴전 발효시부터 제11항공중대가 운용할 수 있는 헬기는
작전 수행용 20대 중에서 오직 각 사령부 행정 연락 지원 목적으로만 3대만이
운용 가능한 상태였다. (야전사령부 1대, 백마사단 1대, 맹호사단 1대).

모든 헬기는 100% 무장해제 하였고 행정지원용 3대에는 동체에 하얀색 띠를
수겹이나 둘러서 비전투용임을 식별할 수 있게 표시한 상태였다.

백마 제9사단장 작전지시가 하달된 그 시각,
맹호사단 지원용은 퀴논까지 가야하는 거리관계로 이미 기지를 출발한 이후였고,
야전사령부용도 나트랑 공항으로 출발하고난 다음이어서 항공중대기지에는
백마사단 지원용 1대밖에 없었다.



로켓포와 박격포의 집중공격을 받고 있는 제2중대의 위기상황도 문제려니와
비행에 가장 치명적인 악천후 기상 (운고 약 500피트의 낮은 구름, 강한 돌풍,
바다에 내리는 비로 인한 악시정) 때문에 투이호아 지역에만 작전 경험 2년에
작전비행 2500 시간의 베트남전 최고참인 이승호 소령이 작전 임무를 명 받았다.

UH-1 헬리콥터 조종간을 잡은 이승호 소령이 붕로만 입구의 1번국도
고개 정상에 위치한 제1대대 헬기장에 착륙한 것은 9시 10분경.
도착즉시 백마29연대장과 대대 작전장교로부터 작전브리핑을 받았다.

호아쑤언남 계곡 중간지점에 위치한 제2중대의 퇴로를 차단하기위해
휴전 바로 직전인 27일밤중에 베트콩들이 제2중대의 북쪽과 남쪽에 위치한
1번국도상의 교량 2개를 폭파하였고, 28일 새벽 이를 정찰하러 나갔던
제1대대장 류재문 중령 및 아군 5명이 전사하였고 현재 퇴로가 차단되어
고립되어 있는 2중대를 향해 베트콩이 계속 화력을 쏟아 붓고 있기 때문에
희생자가 발생하기 전에 전 중대원을 조속히 구출해야 된다는 것이였다.
현재는 모두 벙커 속에 엄폐해 있기 때문에 피해가 없다는 것이였다.

곧바로 9시 30분경부터 구출작전 비행이 시작되었다.
계곡에 낮게 깔린 구름 때문에 비행 가능한 계곡의 폭은 더 좁아져 있었고
붕로만에서 불어오는 돌풍과 그 좁은 계곡을 갈갈이 찢어 놓는듯한 포화의
작열음과 섬광으로 인해 계곡안은 문자 그대로 지옥의 아비규환이였다.

이승호 소령은 계곡 진입과 동시에 베트콩으로부터 피격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월남전에서의 풍부한 경험을 살려, 구름에 바짝 붙어 계속 지그재그로 비행하였으나,
얕은 계곡안에 로?포가 작열하면 번쩍이는 섬광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시력을
상실하고 오장을 찢는듯한 파열음의 진동 때문에 헬기가 울부짖듯 요동치는
최악의 비행상태는 피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지옥으로의 비행은 시작된 것이다.



가까스로 제2중대 헬리포트에 도착하여 병력을 철수 시키려 할 때, 불안을 느끼던
병사들이 서로 먼저 타겠다고 한꺼번에 몰려드는 바람에 과다한 탑승인원으로
이륙중량을 초과하므로써 헬기가 뜨지않아 애를 많이 먹고 시간이 지체 되었다.


구출작전은 두 번째까지 탑승병력이 통제되어 있지 않아 무질서와 혼란 그 자체였다.
UH-1 헬기는 조종사와 부조종사를 제외하고 완전무장병력 12명이 탑승할 수 있으나
서로 먼저 탈려고 몰려드는 바람에 뒤엉키어 헬기가 이륙을 못하였다.
그러다보니 헬리포트에서 헬기와 병력이 동시에 베트콩에게 노출되는 시간이 많아져
헬리포트에 집중되는 포화에 피격될 위험이 너무나 높았다.

이승호 소령은 2중대장께 지시하여 탑승병력을 10명씩 조를 짜서
탑승 순번을 정하고 또한 서류와 무기는 완전무장 2인분 무게 정도로 하여
철수 순번을 정해 병력 탑승시에 각자가 나눠가지고 대기하고 있다가
헬기가 도착 즉시 일사불란하게 순식간에 탑승이 완료되어 적에게 노출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도록 조치하였다.

또한 헬기 착륙지점도 헬리포트 위치를 같은 장소에 정하지 않고 대대 출발시에
무전기로 헬기 착륙지점을 사전에 약정하여 매번 착륙지점을 바꾸므로써
베트콩이 예측 불가능하도록 하였다.

이승호 소령은 좁은 계곡의 지형 특성 때문에 병력을 태운 후 선회 비행을
할 수 없을뿐더러 또한 베트콩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도 시간이 더 걸려도
일방통행식 비행루트를 택하기로 하였다.

즉 호아쑤언남 계곡의 입구에 위치한 대대본부를 출발하여 1번국도를 따라
호아쑤언남 계곡 속을 북쪽으로 비행, 계곡중간의 2중대에서 병력을 탑승시킴과
동시에 그대로 계곡 북쪽을 향해 직진 비행을 하여 투이호아 평야가 나오면
오른쪽으로 선회하여 바다로 나가서 붕로만 상공을 통과하여
1대대본부에 이르는 이른바 베트콩이 잠복중인 혼바산을 끼고 시계 방향으로
일주하는 비행루트를 택했던 것이다.
한번 구출 비행에 약 40분이 소요되는 거리였다.



3회 비행시부터 포격이 갑자기 멎더니 5~6명의 베트콩들이 시체 2구를
1번 국도변의 크고 넓찍한 바위 위에 가져다 놓는 것이 목격되었다.
어제 피격된 백마 29연대 1대대장 시신과 또 한명의 아군 시체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시체옆 바위 위에 빨간페인트로 쓴 글의 내용이 보였다.

"Remember Dien Bien Phu!"
(디엔비엔푸를 상기하라!).


한국군 2중대를 디엔비엔푸의 예처럼 섬멸시키겠다는 경고였다.

베트콩들이 바위에서 철수하자 다시 포화가 계속되었다.
투이호아에서 2회의 연료 보급을 제외하고는 날이 어두워져
더 이상 비행이 불가능해진 저녁 5시 30분까지 무려 10여회의 포화속을 뚫고 강행한
비행을 통해 약 80명의 병력을 구출 할 수 있었다.

바다 상공의 악천후와 야간비행의 위험 때문에 오후 4시경에는 구출비행을
종료하여야 했으나 구출대기병력이 아직 많이 남아있어 이승호 소령은
구출비행을 끝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병력 전원을 구출하지 못한 것은
병력 외에 중요한 서류나 물자도 동시에 철수 시켰기 때문이었다.

날이 어둡기전 병력 전원 철수가 힘들것으로 판단한 백마29연대장이
백마사단에 기갑부대 출동을 요청하여 헬기가 철수한 약 2시간 후인
밤 8시경 나머지 병력 약 40여명을 철수 완료 하였다.

이미 날은 저물고 구름이 낮게 깔려 칠흙같이 어두운 바다 상공을 비행하여
본부기지까지 귀환하는 비행도 구출비행 못지 않은 죽음의 비행이었다.
종일 계속된 지옥에의 비행 때문에 귀환 비행도중 부조종사 안기홍 중위는
드디어 졸도해 버리고 말았었다.

(끝)



(에필로그)

구출작전이 끝나고 대대를 떠나기전, 헬리포트에는
대대본부에 있던 전 장교와 병사들이 나와서 이승호 소령을 환송하였고,
백마 29연대장은 이승호 소령의 팔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또한 구출된 병사 전원도 떠나려는 헬기를 에워싸고 눈물을 흘리며
이승호 소령을 환송하였다.
영화의 한 장면 못지 않는 한편의 전중송가(戰中頌歌)였다.

다음날,
십자성11항공중대에서는 즉각 사단본부에 이승호 소령에 대한
훈장상신을 하였으나 1월28일 8시 휴전발효와 더불어 주월한국군의 작전임무는
행정적으로 종료된 상태였기 때문에 이후의 작전에 대해서는
훈장상신이 불가하다고 하여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휴전은 되었지만 그후 백마28연대는 철수할 때 혼바산을 넘지 못하고 수송기로 철수했다.

"혼바산의 도깨비" - 김영배 전우 이름도 나옵니다

백마사단은 625전쟁때 창설되어 1952년 10월 강원도 철원부근 395m밖에 안되는
백마고지에서 중공군 대병력을 격파한 "백마고지전투"로 빛나는 전공을 세웠다.
그로부터 14년후에 백마사단은 다시 월남전선에 파월되어 용맹을 과시하게 된다.




1966년 9월5일,

백마사단 제28연대는 나트랑 해안에 상륙하여 육로로 투이호아에 도착한다.
전술지역내에는 산악지대인 다비아(Da Via)산과 혼바산(Hon Ba)이
해안을 바라보고 우뚝 서 있다.
두 쌍봉은 투이호아 평야에 돌출되어 그 일대를 감제할 뿐만 아니라,
1번도로 및 철도가 산기슭에 연하여 남북으로 이어져 있으므로
언제나 기습의 위험성이 있는 지형이었다.

산악지대는 거의 대부분 울창한 관목과 가시덩불로 뒤덮혀 있으며,
고지의 앞뒤 경사면의 급경사 지역에는 많은 천연동굴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계곡에서부터 흐르는 물줄기는 남지나해로 흘러 다농(Da Nong)강을 형성하고 있었다.



"혼바산의 개가"

월남에서 제일 중요한 도로는 두말할 나위없이 1번도로이다.
남북이 긴 국토인데다 1번도로만이 남북을 연결하는 유일한 도로이기 때문이다.
백마사단은 전술책임지역내에 1번도로가 뻗어 있지만 드문드문 베트콩이
도로를 장악하여 도로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었으므로,
판랑(Phan Rang)에서부터 투이호아(Tuy Hoa)까지의 1번도로 개통을
조속히 실현시키기 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제28연대장 최명재 대령은 전술기지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는 점에 역점을 두면서
1번도로 개통을 위한 작전준비에 있어서 혼바산(Hon Ba)의 확보를 제1순위로 정하였다.
그 까닭은 혼바산으로부터 내륙으로 뻗은 험준한 산줄기는, 남북의 이동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1번도로가 혼바산 능선을 넘어야 닌호아와 투이호아로
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베트콩은 여러차례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안간힘을 다하여 그 구간을 차단하였다.
더우기 혼바산은 남쪽으로 군수물자 보급항 붕로(Vung Ro)만과
북쪽으로 투이호아 비행장을 비롯한 평지에 있는 연합군의 중요군사시설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지여서
혼바산의 탈취와 이의 장악은 시급을 요하는 일이었다.

연대장은 이 지역일대의 적정파악 없이 작전을 실시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제2대대로 하여금 적정을 탐지케하였다.
제2대대는 혼바산 북쪽에 설치된 제7중대기지를 발판으로
매일 활발한 정찰과 아울러 매복을 실시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0월 23일 대대장 오상욱 중령의 지휘하에 지형정찰을 하다가
베트콩이 설치한 부비트랩이 폭발하여 대대장외 부하 4명이 순직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였다.

제2대대는 10월 25일부로 새로 부임한 김기택 중령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첩보수집활동 끝에 이 지역일대에서 활동하는 적에 관한 상황을 알게 되었다.
적은 푸엔(Phu Yen) 성에서 정예를 자랑하는 베트콩 제377중대 및
호아히엡(Hoa Hiep) 게릴라들로서, 그들은 최초 맛캇산(Nui Mat Cat)의
서쪽 계곡에서 무장을 갖춘다음 이 일대로 이동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뒤 한동안 행방이 묘연하다가 최근에 다시 혼바산 북쪽 기슭에 침투하여
진지공사를 하고 있다고 확인되었다. 그들은 주간에도 작업을 계속하면서
주민들과 자주 접촉하고 한국군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군이 월남전 정글에서 전투경험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주야간 할것 없이 대담하게 활동하는 것이 목격되는 등 빈번히 움직였다.

그러던중 다낭강 남쪽과 혼바산 북쪽에서 각각 소대규모의 베트콩과
제7중대 수색대간에 경미한 교전이 있었고,
11월 11일과 12일 양일간에는 다낭(Da Nang)강 상류 및 하류지점에서
소대규모의 적과 교전하였다. 이와같이 계속되는 도발은 제7중대의 기지를
습격하려는 전초전으로 판단되었으므로, 그들이 더 활개를 치기전에 먼저 선수를
쓰는 길만이 전술책임지역을 안전하게 만드는 지름길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작전지역의 혼바산은 산악 전체가 암석과 정글로 형성되어 있다.
북쪽지역은 광활한 평야에 논과 습지, 그리고 다낭강을 비롯한 크고 작은 하천들이
서쪽에서부터 해안쪽으로 흘러 남지나해에 이른다.

베트콩들은 혼바산 북쪽기슭에서부터 5부능선까지의 급경사 지대에 구축된 천연동굴
진지를 최대로 이용하여 아군의 행동을 감제할 뿐만 아니라, 개활지를 횡단하여
접근하는 공격부대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유리한 지형을 점령하고 있었다.
또한, 그 지대에는 암석이 많고 기복이 심하기 때문에 포병사격과 항공폭격의 효과는
천연적인 은폐 엄폐물이 많아 감소 되리라고 예상되었다.

이번 작전계획은 11월 5일에 작성하기 시작하여 지형에 대한 연구와
여러가지 방안에 대해서 비교분석한 끝에 14일 각대대에 계획지침을 하달하면서
대대별로 작전에 대한 준비를시켰다.
특히 작전의 기만을 위하여 양동 부대로서 제1대대를 지정하고
'진격 1호전투'를 실시 하였다.

11월 16일부터 23일까지의 기간 중, 각대대는 분대장급이상으로 하여금
2회에 걸친 지형정찰을 실시케 하였으며 통로개척을 위하여 소대 및 중대단위로
9회의 수색정찰을 실시하였다. 정찰 마지막날인 23일 11시20분에는
제5중대,제6중대,제7중대의 분대장급이상 정찰요원이 다낭강 남쪽에서 지형정찰 중,
부비트랩이 폭발하여 1명이 전사하고 7명이 중경상을 입는 등
적 또한 아군의 활발한 움직임에 대처하기 위한 음모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한편 백마사단은 25일까지의 기간에 F-100 전폭기 9대, B-57폭격기 2대로
목표지역 일대에 대한 항공폭격을 실시하여 적에 대한 응징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제28연대가 작전에 대한 복안이 서고 계획이 마무리 되면서,중대장급 이상 지휘관과
연대참모 전원이 참석한 작전회의에서 연대작전명령 제6호를 하달하였다.

작전명령 요지

1). 연대는 현임무를 계속 수행하면서 11월 25일 5시 10분을 기하여
혼바산(Hon Ba)에서 날뛰는 적을 포착하여 격멸하는 작전을 전개한다.
2). 이번 작전은 '도깨비 2호작전'으로 명명하며, 항공폭격과 포병사격에 의한 공격
준비사격에 이어 헬리콥터에 의한 공중기동 및 도보이동으로 포위망을 형성한다.
3). 최초 제1대대를 동쪽, 제2대대를 서쪽으로 하여 혼바산 북동쪽과
남서쪽으로 침투한 다음 포위망을 압축한다.
4). 작전기간 중 미군 제4사단에서 장갑수송차량 4대 및 미해군 제7함대의
로케트포 함정 1척, 그리고 미 제10육군 항공대대 제48중대에서 헬리콥터 9대가
아군을 지원할 것이다.
5). 작전은 전후 양단계로 구분하여 실시하는데, 제1단계작전은 11월 25일부터
11월 29일까지이며 이 기간에는 적을 포위하여 압축한 다음 목표를 탈취한다.
제2단계작전은 11월30일부터 12월10일까지이며 기간중에는 반복수색을 실시한다.

위와 같은 작전명령에 따라, 각 대대장은 대대자체의 기동계획과 화력계획을 세우고
관계부대와 긴밀한 협조를 갖는 등 제반 전투준비를 서둘렀다.



11월 25일.

이날은 작전이 시작되는 날이다.
흐린 날씨에 바람이 약간 불고 기온은 별로 덥지않아 작전에는 별지장이 없어 보였다.
제1대대장 이영우 중령은 연대수색중대를 배속받아 차단부대로 투입하기로 하고,
제2대대와의 전투지경선을 경계로 동쪽으로 3km에 달하는 차단선을 맡겼다.
그리고, 예하중대로 하여금 계획된 진출로에 따라 공격을 개시케 하여
오후 3시경에는 포위망을 형성 하였다.

제2대대장 김기택 중령은 5시 10분부터 행동을 개시하여
5시 40분까지 1번 도로상에 집결토록 예하중대를 기동케 하고,
6시 25분에 제6중대를 선두로 일제히 진출을 시작하였다.
이무렵 계획된 함포사격이 5시 10분부터 6시까지 목표지역을 강타하였으며
6시부터 6시 50분까지는 포병의 제압사격이 목표상에 집중되었다.

제2대대 예하 중대들은 오후3시경부터 통제선 1(포위망형성선)에 도달하기 시작하여
오후 6시 50분에는 혼바산 서반부에 대한 포위망이 형성되었다.
공격개시 첫날, 제1대대와 제2대대 공히 적과의 접촉은없었다.

11월 26일.

이날도 흐린 날씨에 바람이 불었다.
기온도 별로 높지 않아 남국의 열대 답지않게 시원했다.
제1대대는 포위망을 형성한 중대와 차단선에 배치된 수색중대와
연락을 유지하면서 통제선 2로 진출을 시작하여 포위망을 조금씩 죄어나갔다.

제2대대는 7시부터 중대간의 연결을 유지하였다가 수색을시작하였다.
김선창 지휘하의 제5중대는 진출 중, 베트콩 2명이 숲속으로 자취를 감추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그 위치가 베트콩 제377중대 B2소대 거점의 부근으로 추측하였다.
그리고 적의 경계병이 경계중 아군을 발견하고 달아난 것으로 판단하고
제2소대로 하여금 그들을 추격케하면서 그부근일대를 샅샅이 수색하였다.
그러나 부근에서 흩어진 장구 약간을 주웠을 뿐 적을 발견하지 못하고
통제선2에 진출, 오후 6시부터 야간전투로 전환하였다.

민평식 대위가 지휘하는 제7중대는 차단선에다 3개소대를 일선으로 배치하고,
제1소대를 동손산에서부터 북동쪽으로 뻗은 돌출부에 매복시켜
계곡 입구를 감시토록 하였다. 제3분대장 신수철 하사가 이끄는 매복조가
저녁 7시 30분에 절벽을 타고 하산하는 1개 분대 가량의 적을 발견,
10m 가까이까지 유인하여 집중사격을 가한 끝에 3명을 사살함으로써
작전 중 최초의 전과를 기록하였다.



11월 27일.

제1대대는 깊은 안개를 무릅쓰고 정글의 가시덤불과 관목들을 헤치면서
계곡 아래쪽으로 수색을 시작하였다.
이때 제1중대지역에서 베트콩 2명이 제3중대 지역에서 6명이 발견되었는데,
워낙 쏜살같이 정글 속으로 달아나버려서 잡지 못하였다.

제2대대 또한 종일 정밀수색에 열을 올렸지만 적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다음날 새벽 1시경, 제1대대장은 대대본부의 외곽을 경계중이던 본부중대의
매복조로부터 범선 4척이 다낭 강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대대장은 검토 끝에 적이 배를 타고 도망가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왜냐하면, 월남 행정당국에 의하여 야간의 선박운용이 일체 허가되지 않았으므로
적으로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대대장은 포병사격을 요청하여 제압사격을
가하는 한편 4시에 1개중대 규모(제4중대에서 80명, 본부중대에서 104명)의 병력을
출동시켜 미리 범선의 앞길에 매복시켰다.

이윽고 4시 40분에 제4중대의 매복조는 접근하는 범선 3척을 정지시켰으나,
이에 응하지 않고 달아나므로 집중사격을 가하여 2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했다.
뒤에서 다른 매복조도 5시 50분에 다낭 강 지류를 따라 달아나는 범선 2척을 격침하고
헤엄쳐 살아남은 2명은 추격끝에 붙잡아 압송하였다.
그후 확인된 바에 의하면, 그들은 호아히엡 마을 일대의 게릴라로서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다가 격파되었다는 것이었다.

날이 밝아지자,
제1중대는 각 소대별로 책임지대를 분담시켜 반복하여
정밀수색을 실시했다. 그 결과 제3소대 제1분대장 정귀병 하사가
최초로 소총 1정을 노획하였다.
한편 제2대대는 제7중대를 투입하여 적의 예상퇴로를 차단한 후,
제5중대와 제6중대로 목표지역을 포위하고
외곽에서 내곽으로 반복수색을 실시하였지만
적을 발견하지 못하고 오후 6시부터 야간전투로 전환하였다.

이날 사단장 이소동 장군의 안내로
주월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장군이 제28연대 전술지휘소를 방문,
그간의 전투상황을 보고 받았다.

이 자리에서 연대장 최명재 대령은 당초의 계획을 바꾸어, 지역내의 베트콩들을
뿌리뽑을 때까지 인내와 끈기로 장기간의 작전을 계속 수행하겠다고 다짐하였다.
보고를 받은 채명신 사령관은

"월남전에서의 전투는 한국전쟁과는 달리 눈앞에 보이는 적이 없으므로
꾸준한 노력과 끈기로 적을 찾아내야 될것이다. 또한 예상했던 것보다
작전이 부진하고 전과가 없다고 해서 실망하지 말고 소신껏 임무를 수행하라."

고 위로한 다음,

"적의 일부는 포위망을 벗어난 것 같지만 주력은 아직 동굴 깊숙이
숨어있을 것으로 판단되니, 작전을 지구전으로 전개하면서 작전기간을
연장해도 좋으니 참고 이겨내어 꼭 성과를 얻도록 하라."

고 장기전을 권장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이면서 말을 맺었다.

"월맹 정규군 1명보다 베트콩 1명이 더 가치가 있으며 그들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어내야 하고, 적이 없는곳에 적이 있는 것으로 믿고 계속적으로 작전을 실시하라.
그리고 월남전이란 전후방이 따로 없고 또 베트콩은 아군이 탐색한 지대에
다시 잠복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철저한 반복수색을 실시하라.
또한 헬리콥터에 너무 의존하는 작전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리고 백마사단이 증파된 뒤 처음으로 시작한 대부대의 작전인만큼,
연합군은 물론 전 월남인이 주시하고있으므로 꼭 작전을 성공시키기 바란다."



11월 29일.

작전이 시작된 지 5일째 날이다.
이날 아침 8시에 작전회의를 주재하던 연대장은, 각 대대장들에게 별명이 있을 때까지
목표지대를 깔고 뭉기듯이 계속 끈기를 갖고 반복 수색할 것을 지시하였다.

제1대대장은 각 중대를 통제선2로 진출시켜 반복수색에 들어갔다.
11시 45분에 제1중대 제3소대장 홍명성 중위가 지휘하는 탐색조가
혼바산 북동쪽 하단에서 1개소대로 추측되는 베트콩과 부딪쳤다.
홍중위의 탐색조가 인원수가 적음을 알아차린 적은 한쪽으로 포위망을 형성하면서
일제사격을 시작하였다.

"따따따따따‥‥따따따따‥"

갑자기 적의 사격이 집중되자, 조용하던 정글 일대는 귀청을 때리는 듯한
요란한 총성으로 들끓었다. 그동안 적이 안 나타나 사실상 정신이 해이된데다

"적이 없는데도, 자꾸만 수색을 되풀이 하라니 너무들 한다."

고 투덜대면서 건성으로 수색을 하던 차에 느닷없이 적탄이 날아오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총성을 들은 화기소대가 재빨리 진출하여,
홍중위의 탐색조를 엄호하면서 2개분대를 적의 후방과 측방으로 추진시켰다.
그리고는 맹렬한 사격을 퍼부었다.

"타타타타탕‥‥ 따따따따‥‥』

2정의 기관총과 3정의 자동소총이 연발로 불을 뿜어대니 적의 총성은
상대적으로 약화된 것처럼 들려왔다. 홍중위의 탐색조는 비로소 용기를 얻어
적이 있는 곳을 향하여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제 외롭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아 새로운 힘이 솟은 이상,
적을 모조리 격멸해야 되겠다는 사명감으로 충만하게 된 것이다.

적은 사면에서 자기들을 향하여 포위망을 압축하는 한국군의 공격속도에 놀라
차츰 기세가 약해지면서 흔들리는 기미가 보였다. 홍중위는 탐색조를 진두지휘하며,

"돌격 앞으로 !"

소리치며 적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적은 깜짝 놀라더니 진지를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이때 베트콩들은 예기치 못한 화기소대의 잠복조에 걸려
일제사격을 받아 순식간에 6명이 사살되고, 4정의 개인화기를 노획당하였다.

도망가는 베트콩을 뒤쫓던 소대 선임하사관 이학수 중사와 서창환, 장경춘 두 일병이
베트콩 4명을 사살하고 3정의 소총을 노획하였다. 서쪽에서 진출하던 제2소대도
도망하는 베트콩을 발견, 2명을 사살하고 소총 1정을 노획하였다.
그러나 적이 던진 수류탄에 의하여 소대장 주동찬 소위와 이행현 일병이
각각 눈에 파편상을 입고 후송되었다.



한편 제2대대장 김기택 중령은 제5중대와 제6중대의 병력을 각각 반으로 나누어
일부는 포위선상에 배치하고 나머지 병력은 탐색토록 하였다.
또한 제7중대에서 1개소대를 추가로 차출하여 목표1과 2의 중간에 투입시켜
차단과 매복조로 운용하였다. 이에따라 제5중대는 통제선2에 제1소대와 제2소대를
배치하고 나머지 병력으로 정밀수색을 하였다.

혼바산 북서쪽의 돌출부로 진출하던 제3소대 화기분대 기관총사수 최길수 상병은
계곡을 따라 하산하는 베트콩 1개소대를 관측하였다.
최상병은 이 사실을 소대장 박춘 소위에게 즉시 보고하였다.
박소위가 지체하지 않고 적이 있는 쪽으로 진출하여 확인하였더니
과연 1개소대의 베트콩이 정글을 헤치면서 달아나는 것이었다.

소대장은 제1분대와 화기분대를 지휘하여 동쪽으로 진출하고,
선임 하사관으로 하여금 나머지 2개분대를 지휘하여 서쪽으로 우회 시킴으로써
양쪽으로 포위하면서 개활지로 통하는 한쪽을 열어 두었다.

적은 아직 아군의 포위를 모른 체 사주경계를 하면서 하산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선두가 화기분대의 오른쪽을 통과하고, 그들의 후미가 제1분대의
왼쪽끝에 진입하려는 순간, 소대장의 사격신호에 의하여 일제히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따따당‥‥‥ 따따따따‥‥타타타타‥‥‥ 타타타탕‥‥"

기관총과 자동소총 등의 막강한 자동화기들이 연발음을 우렁차게 내뱉으면서
베트콩 쪽에 탄환을 퍼부었다. 베트콩들은 느닷없이 기습을 당하였으므로,
정신을 못차리고 고래고래 괴성을 지르면서 이리뛰고 저리뛰고 난장판이 되었다.

소대장이 지휘하는 제1분대와 화기분대쪽에서 기습을 당한 베트콩은
선임하사관이 지휘하는 제2분대와 제3분대 쪽으로 달아나는가하면,
거꾸로 선임 하사관쪽에서는 소대장쪽으로 달아나는 등
탁구공이 양쪽에서 튀듯 우왕좌왕하면서 도망갈 구멍만 찾았다.
그러나 양쪽에 모두 한국군이 있다는 것을 알고 바위틈과 나무그늘에 숨어
저항하기 시작하였다.

"따당...따콩..."

죽음을 각오한 몇 놈은 상체만 드러내고 아군에게 사격을 가해왔다.
소대장 박춘 소위는 사격전 만으로는 좋은 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고 염려한 나머지
소대원들에게 돌격을 준비 시켰다. 대오가 갖추어지자,
소대장은 목이 터져라고 큰소리를 외쳤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돌격 앞으로!...나를 따르라!..."

호령과 동시에 적진으로 뛰어나갔다.
선임하사관은 반대쪽에서 적이 숨어있는 바위뒤를 소총으로 사격하여,
단숨에 3명을 사살하고 AK소총 2정을 노획하였다.
소대장을 따르던 무전병 류영호, 전령 강의수 두 상병은,
아군의 돌격기세에 놀라 부근의 천연동굴에 숨으려는 적의 뒤통수에 사격을 가해
각각 2명씩 4명을 사살하고 소화기 2정을 노획 하였다.

한편 제3분대 부분대장 황익주 병장은 자동소총조를 이끌고 돌출 능선쪽에서
아래로 도망하는 베트콩 1명을 사살하였다.

또한 전령 조덕연 일병은 분대간의 연락을 유지하면서 분주히 오가다가
베트콩 1명과 정면으로 맞부딪쳤다. 서로 총질할 겨를도 없이 격투에 들어갔다.
그러나, 태권도 초단 실력의 조일병과 왜소한 체구의 베트콩과는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조일병은『얏! 』하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주먹으로 뒤통수를 내려치니
베트콩은『욱!..』소리를 내뱉으며 그대로 뻗어버렸다.
그리하여 그놈이 가지고 있던 소총을 빼앗아 개머리판으로 한번 더 내려치니
머리에서 피가 튀었다. 얼굴과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조일병은 냅다 뛰면서
소대장 박춘 소위 앞으로 달려갔다.

소대장은 조일병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얼굴이고 옷이고 온통 피투성이라 그가 중상을 입은 줄로 생각한 것이다.

"조일병, 부상당했구나..."

소대장이 부르짖듯 말했다. 그러자 조일병은 멋적은 듯이 웃으면서,

"아닙니다. 저도 한 놈 해치우고 이것을 빼앗았읍니다."

자랑스럽게 베트콩의 AK소총을 번쩍 들었다.
소대장은 그때서야 그가 무사한 것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잘 했다."

칭찬을 해주었다. 그리고 전방의 적을 향하여 사격을 시작하였다.
이때 화기분대장 정귀남 하사는 동굴 속에 잠입한 베트콩을 뒤쫓아 들어가
육박전을 벌인 끝에, 개머리판으로 베트콩 2명을 박살내고 AK소총 2정을 노획하였다.
분대장은 동굴이 규모가 큰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분대원과 같이 정밀수색한 결과
동굴 속에 숨겨둔 소총실탄 58,119발과 방독면,전화기 등을 노획하였다.

그후 확인된 바에 따르면 그 동굴은 베트콩의 탄약고 였었다고 한다.
베트콩에 있어서 58,119발의 소총 실탄은 적지 않은 물량이었으므로,
그들에게 커다란 타격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리하여 제5중대는 이 전투에서 베트콩 1개소대를 격멸하고 많은 무기와 실탄 등을
노획함으로써 이번 전투가 시작된 이후 비로소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다.
연대장 최명재 대령은 각 대대로부터 교전상황을 보고받고 전장을 순시하면서
상항을 판단한 바, 적이 이곳에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지역내의 적을 격멸할 때까지
장기간의 작전을 계속 추진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연대장은 각 대대엔 추가명령을 하달하였다.

추가명령 요지

1). 연대는 11월 30일부터 제2단계 작전으로 전환하려 한다.
2). 각 대대는 책임지역을 반복수색하면서 지하에 잠복한베트콩을 찾아내어 섬멸한다.
3). 제1대대는 혼바산 남서쪽 계곡을 정밀수색하고 연대수색중대를 계속 지휘하라.
그리고 차단임무에서 수색작전으로 전환시켜라.
4). 제2대대는 1개중대로서 혼바산 정상을 점령하고 임시 중대기지를 그곳에 설치,
운용하라.
5). 탐색 간에는 다음 사항을 유의하라.
*탐색 완료지역이라 할지라도 계속 정밀수색하라.
*탐색지역의 범위는 혼바산 일대로 제한한다.
*탐색간에는 밀집대형을 피하라.
*각개병사는 가벼운 몸차림으로 수색에 임하라.

위와 같은 추가명령에 따라,
각 대대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정신무장을 갖추고 제2단계 작전에 들어갔다.


11월 30일.

작전이 시작된 지 엿새째가 되는 날이다.
아침 일찍부터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별로 무덥지 않은 날씨였으므로 병사들이 활동하기에는 알맞은 기온이었다.

제1대대장 이영우 중령은 연대의 추가명령에 의거하여,
혼바산 북쪽에서 차단 임무를 수행하던 연대수색중대를 수색작전 임무로 전환시켜
목표의 중간지대를 정밀수색토록 하였다.
수색중대는 이에 따라 2개소대씩 목표 중간부의 좌우측에 투입하여
계류를 중점적으로 정밀수색토록 하였다.

그런데, 오전 중 제1소대가 동굴을 수색하다
부비트랩이 폭발하여 장춘상 상병이 전신에 파편상을 입고
천일수 일병이 안면에 상처를 입고 후송되었다.
또한 제3소대 제2분대는 적이 잠복한 동굴을 찾아내어
접근하는 순간, 수류탄 2발이 아군쪽으로 날아왔으나
제2분대장 진성호 하사가 수류탄을 발로 차버리는
기지로 위기를 모면하였다.

잠시 대열을 수습한 제2분대는 일제히
동굴입구에 전진하여 수류탄을 던졌다.
옥정춘 상병은 두손에 수류탄을 쥐고
동굴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수류탄을 던져 그곳에서 저항하던 2명의
베트콩을 폭사시키고
소총 1정을 노획하였다.

한편 류재문 대위가 지휘하는 제1중대는 전날 혼바산 북동쪽 산기슭에서
접적한 바 있는 지점을 반복수색하다가, 부비트랩이 폭발하여
김영태 일병이 파편상을 입고 후송되는 반면에 그 지점의 근처 동굴에서
문서 85점을 찾아내어 연대에 긴급 후송하였다.

연대전술지휘소에서 그문서를 접수한 정보주임 한일수 소령이
군사정보대 피편조장인 김인수 대위의 협조를 받아 분류시켰다.
그결과 병기에 관한 서류에서 소총을 3정 단위로 포장한 도합 156정의 소총을
혼바산 속에 은밀히 저장해 두었다는 새로운사실을 알아냈다.

그리하여 곧 이를 예하부대에 통보하여 무기고를 찾아내도록 지시했다.
김기택 중령의 제2대대는 제5중대로서 혼바산의 남서쪽 계곡을 정밀수색 시키고,
제6중대로 하여금 혼바산의 북서쪽 능선을 확보하여 중대의 임시전술기지를
설치토록 하는 한편, 제6중대가 담당하던 지대를 제7중대에 인계시켰다.

이에 따라 각 중대는 아침 7시부터 행동을 개시하여 각각계획된 목표를 공격 중,
최노수 대위가 지휘하는 제6중대의 제3소대 제3분대장 강석준 하사가 숲속에서
교묘하게 위장된 움막을 수색 끝에 지하로 연결된 동굴을 찾아냈다.

소대장 민경국 소위의 지휘하에 처음으로 화학작용제를 동굴속 깊이 던져넣고
효과증진을 위하여 바람을 넣는 마이티 마이트 (Mity Mite)를 사용하였으나,
워낙 동굴이 길어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이를 지켜보던 분대장 강하사가 흔자서 동굴에 들어가겠다고 지원하면서 앞으로 나서자,
뒤이어 선임하사관 황덕염 중사와 부분대장 박재동 하사가 지원하였다.
이리하여 소대장은 선임하사관을 특공조장으로한 3명에게 수류탄과 단도 및 손전등을
휴대시켜 동굴속에 투입하기로 작정하였다.

잠시후 준비가 끝나자, 특공조 3명은 동굴속으로 들어갔다.
조용한 공간 속에서 무엇인가 튀어나올듯한 전율이 느껴졌지만
그들은 군인정신으로 두려움을 달래면서 한발 한발 발걸음을 옮겼다.

10m쯤 진출하였을 때,
박재동 하사가 오른쪽 전방에서 이상한 소리를 듣고 앞서가는 분대장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때 강하사가 그 뜻을 알아차리고 방향을 돌리면서 수류탄 1발을 잽싸게 던졌다.

"쾅!~"

동굴 안에서 요란하게 울림과 동시에 전방으로 치달아 뛰어가니,
핏자국이 땅바닥에 얼룩져 있고 권총 1정이 놓여져 있었다.
피묻은 자국을 따라 한발 한발 전진 중 갑자기 가슴에 쇠뭉치가 닿는 것을 느꼈다.
강하사는 순간 수류탄임을 직감하고, 선임하사관과 부분대장을 반대쪽으로
밀어 붙이면서 그쪽을 향하여 엎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짱!~"

하는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적의 수류탄이 터졌다.
분대장 강하사는 폭발지점이 너무 가깝게 있었기 때문에 엎드렸지만
부득이 오른쪽 허벅지에 파편상을 입고, 부분대장은 왼손에 가벼운 상처를 입었다.
참으로 아슬아슬한 위기의 순간이었다.
단 일초만 늦었어도 이들 3명은 몰살하였을 것이다.

강하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피를 흘리면서 진출 끝에 베트콩과 육박전을 벌였다.
이때 다른 베트콩 1명이 합세하여 강하사의 등을 단도로 내려찍으려는 순간,
선임하사관이 재빨리 달려들어 베트콩을 때려 눕힌 다음
부상을 입은 부하들을 부축하여 동굴밖으로 나왔다.



이들로부터 보고를 받은 중대장 최노수 대위는 잔당이 남아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재차 황덕염 중사를 특공조장으로 하여 제1분대장 김영재 하사와 화기분대장
김영주 하사, 그리고 추광호 상병 등 4명을 다시 들여보내 굴속을 수색시켰다.
베트콩들은 다시 들어온 수색조를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나머지
무저항 상태로 앉아있었다. 그리하여 이들 4명의 적을 포로로 하였다.

제7중대 또한 민평식 대위의 지휘하에 정밀수색 중, 화기소대 57mm 무반동총
분대장 최정웅 하사와 60mm 박격포사수 변경식 상병이 혼바산의 북서쪽
급경사 지대에 구축된 동굴을 수색하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베트콩 1명이 분대장 최하사에게 단도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순간 다른 한 명도 최하사의 등뒤로 뛰어들었다.

최하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발견한 변경식 상병이 대검으로 이들을 찔러 분대장을 구출하였다.
분대장은 어두운 동굴 안에서 변상병을 얼싸안고

"고맙네..."

하고 인사하자, 변하사는 멋적게 웃으면서

"뭘요, 분대장님..."

하며 그를 뜨겁게 안았다. 순간 피보다 진한 전우애가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이들은 노획한 소총, 수류탄 등을 잔뜩 걸머잡고 만면에 웃음을 띠면서
동굴 밖으로 나왔다.

작전이 시작된 지 일주일 째인 12월 1일이 되었다.
연대는 이날부터 여유를 가지면서 부대정비를 시키고 휴식도 취해가며
정밀수색을 병행토록 하였다.



제1대대는 제1중대로 하여금 혼바산 북동쪽 산기슭에서부터 5부능선까지의
암석지대에 있는 동굴의 수색을 지시하였다. 동굴주변을 수색 중, 제3소대
제3분대장 변춘송 하사가 퇴각하는 1개분대의 베트콩을 숲속에서 발견하였다.
변하사가 앞장서서 제3분대는 일제히 사격을 가하면서 진격하였다.

한국군 때문에 겁에 질려 이리저리 피하면서 숨어다니기를 일주일,
굶주림과 피곤함에 공포까지 겹쳐 전의를 상실한 그들인데,
느닷없이 공격을 당하고 보니 당황한 적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다급한 나머지
생명보다 더아끼는 무기를 내던지고 제1소대 쪽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즉시 분대장은 적의 도주방향으로 뛰어들면서 사격을 퍼부어,
단숨에 3명을 사살하고 분대장 김환 일병이 각각소총 2정씩 노획 하였다.

민찬기 대위의 제3중대가 제1중대와 병행하여 혼바산 북동쪽 하단부를 정밀수색 중,
오후 1시30분경 손성종 소위가 지휘하는 제2분대가 도망가는 베트콩 1명을 발견하고
뒤쫓아 갔다. 베트콩은 날쌔게 동굴속으로 들어가 숨어버렸다.
분대장인 이강학 하사는 분대원들로 동굴 주위를 경계하게 시키고,
단신으로 동굴안에 들어 갈려는 찰나, 수류탄 3발이 동시에 날아왔다.
그러나 분대장은 입구 바로 옆에 있는 바위틈으로 몸을 숨겨 위기를 면했다.

"짱,쾅,쾅!~"

조용한 공간을 메아리 치며 적의 수류탄 3발이 폭발하였으나
다행히 아군은 피해를 모면하였다. 순간 적은 1명이 아니고 몇명이 더 있으리라고
판단하면서 수류탄 5발을 굴속에 던져넣었다.
폭음을 일으키며 수류탄이 폭발하자 즉시 동굴 안으로 뛰어들었다.
분대장 이하사는 분대원과 더불어 한발 한발 굴속 깊이 들어갔다.

분대장은 꾀를 내어 베트콩들이 있는 쪽을 향하여 돌을 던졌다.
몇초 후 베트콩들은 수류탄이 아님을 확인하고 좌우 양쪽에서 소총사격을 가해왔다.
그리하여 소총사격에서 반사되는 섬광을 보면서 그들의 위치를 확인한 다음
일제히 수류탄 5발을 양쪽에 던졌다. 요란한 폭음과 함께 비명이 들리더니조용해진다.

분대장은 분대원과 더불어 앞으로 달려나갔는데,
적의 시체4구가 비참하게 나뒹굴고 있었고 근처에는 기관총 3정이 놓여 있었다.
이들이 기관총 사수들인데 한국군을 피하여 숨어 있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기관총 3정을 노획한 이강학 하사의 제1소대 제2분대는 개선장군처럼
기관총을 둘러메고 동굴 밖으로 나왔다.

이때 동굴 밖의 제1소대 주변에 동굴 입구의 위쪽 암석지대로부터 사격이 집중되었다.

"따당, 땅, 땅, 따콩..."

소총사격이었지만 맹렬하게 계속되었다.
소대장 손소위는 즉시 제3분대를 우회시켜 적의 퇴로 쪽에 보내고
제1분대로 하여금 정면에서 공격하도록 조치하였다.
그러자 적은 사격을 중단하고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이때 제3분대장 배소부 하사와
제1분대장 송순복 하사, 그리고 김천수 일병 등이 앞장서서 도망가는 적의 뒤통수에
사격을 가하여 3명을 사살하고 소총1정과 권총 2정 및 무전기 등을 노획하였다.
나중에 확인된 바에 의하면, 이때 사살된 베트콩 3명은 모두 장교급인 베트콩 간부였다.



한편, 제2대대장 김기택 중령은 제7중대를 23고지에 집결시켜 휴식겸
부대정비를 시키고 제5중대와 제6중대로 하여금정밀수색토록 하였다.
이때 제5중대 제3소대장 박춘 소위가 지휘하는 수색대가 11시 45분경
혼바산 북서쪽 계곡에서 지하 15m의 깊은 동굴의 수색 중 악취가 심하여 되돌아 왔다.

보고를 받은 소대장은 제1분대 부분대장 김남용 병장을 비롯한 박영수 일병과
김종성 일병을 선발하여 각자에게 수류탄 5발씩과 손전등을 휴대시켜 재차 수색케하였다.
좁은 통로를 따라 20m 정도를 진입하니 통로가 점점 넓어지면서 끝에 이르러
직경 10m의 광장이 나타났다. 과연 이상한 냄새가 풍겨왔다.

의심스런 생각을 하면서 손전등을 비춰가면서 구석구석을 뒤져보니,
천정구석 쪽에 무엇인가가 풀과 흙으로 덮혀져 있는 것이 보였다.
모두 달려가 그것을 헤쳐본 결과, 구리스로 포장된 3정 단위 소총 3묶음을 발굴하였다.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 김종성 일병은 밖으로 보내 이 사실을 소대장에게 보고케 하였다.

3명의 인원을 더 지원받아 샅샅이 뒤져보니.
도합 72정의 소총과 꼬질대, 분해구, 기름통 등 72개 세트가 같이 있었다.
적의 무기고를 찾아낸 것이다. 이것은 소대로서는 엄청난 전과가 아닐 수 없었다.
베트콩이 생명보다 더 중요시하는 소총이 72정이 나왔다면 1개 중대분이 분명한데,
베트콩으로서는 자기들의 병력72명의 손실 정도가 아니라 그 몇배의 손해를 본 것이다.

특히 월남에서는 무기가 전과의 기본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사람의 머릿수로는 전과를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시체에게 베트콩이냐 또는 그들의 추종자냐, 또는 양민이냐 물어볼 수 없으므로
언제나 사살자 보다는 무기노획을기준으로 포상한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한 소대에서 72정의 소총을 찾아냈다는 것은
베트콩들에게는 커다란 타격이요, 한국군에게는 빛나는 전공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11월 30일 제1중대에서 노획한 적의 문서내용과 부합된 것이다.
그리하여 비밀무기고가 또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각중대에게 무기노획에 대한
사실을 알리면서 거듭 정밀수색을 강조하였다.



12월 2일.

제1대대는 병력을 둘로 나누어, 반은 혼바산 북쪽에 있는 모래 언덕에 집결시켜
세탁 및 장비손질등의 부대정비를시키고 나머지 병력은 책임지역 내에서
반복수색에 나서도록 했다.

전장은 비교적 조용한 편이었지만,
오후 4시 10분경에 제3중대 제2소대 제2분대장 홍순경 병장이 지휘하는 수색대가
해안의 낭떠러지에서 1개분대 규모의 적과 교전하여 그들을 동굴속에 몰아붙이고
동굴 안에다 화염방사기를 뿜어댔다.
그리하여 적은 모두 살상당하고 소총 2정과 기관단총 1정을 노획하였다.
제2대대도 병력의 절반을 휴식과 부대정비에 임하게 하고 나머지 병력으로
책임지역의 정밀수색에 나섰다.

9시 40분경 제6중대 제2소대가 혼바산 북서쪽 돌출부의 중간계곡에서
동굴에 숨겨둔 소총 5정을 찾아내고, 이어서 다음목표를 향하여 진출 중
1개분대의 적을 발견하여 이들을 추격했다.
도망가던 베트콩은 일제히 뒤돌아서 수류탄을 던지고 다시 도망하였다.
선두에서 이를 쫓던 이현호 중사가 뜻밖에 날아온 수류탄이 폭발하는 바람에
애석하게 산화하였으며, 박용덕 일병이 파편상을 입고 후송되었다.
다음날은 별다른 상황없이 정비와 수색을 계속하였다.


12월 4일.

이날은 흐린 가운데 가끔 소나기가 내렸다.
연대장은 목표지역을 변경하여 제1대대는 혼바산의 정상부분을 정밀수색케하고,
제2대대는 서쪽으로 뻗은 능선과 그계곡을 정밀수색토록 지시 하였다.
제1대대장 이영우 중령은 예하중대로 하여금 혼바산 정상부분을 포위수색케 하였더니,
수색중대 제1소대가 도망하는1개분대의 베트콩을 발견하여
이를 사격으로 몰아붙여 4명을 사살하였다.

한편 제2대대장 김기택 중령은 제5중대와 제6중대로 하여금 새로운 목표를 정하여
정밀수색케 하였다. 두 중대는 상호협동하여 적을 포위섬멸키로 하고
제5중대는 정면으로, 제6중대는 목표 서쪽에서 우회하여 측방으로 전진하였다.
이때 화기소대의 최칠룡 일병이 베트콩을 발견하고
즉시 분대장 김진우 병장에게 이를 알렸다.

분대장은 곧 병력을 둘로 갈라, 부분대장으로 하여금 1개조를 데리고
적의 퇴로쪽을 담당시키고 분대장은 곧바로 적의 정면으로 내달았다.
적은 한국군이 양쪽에서 몰아붙이는 것을 발견하고, 무슨소리인지 알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면서 뛰어 나가다가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고 사격을 가해왔다.
적은 수가 많을 뿐 아니라 유리한 지형에서 사격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진우 병장의 제1분대병력으로서는 적을 쉽사리 괴멸시킬 수 없었다.

시간이 상당히 흘렀으나, 그들의 예봉을 꺽지 못한 체 교착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때 상황을 신속히 소대장에게 보고하고 보다 많은 병력으로 포위작전을 폈더라면,
적의 섬멸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병장은 의욕에 넘친 나머지 패잔병 따위의 1개소대정도는
'우리 분대의밥'이라고 외치면서 포위망을 좁혀들어갔다.
김병장은 마침내 돌격을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분대원들을 돌아 보면서

"적진으로 뛰어들터이니 자동소총은 나를 엄호하라."

고 외치고는 결연히 일어나 적진 속으로 돌진하였다.
1개소대가 넘는 적의 병력이 방어사격을 실시하고 있는데
거의 홀몸으로 뛰어든다는 것은 자살에 가까운 모험이 아닐수 없다.
적진에 들어가 적 1명을 사살한 다음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았다.
순간, 적이 먼저 수류탄을 던짐으로써 김진우 병장은 그 자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이에 분통이 치민 백승길 일병, 김길성 일병, 김춘득 일병이 분대장의 뒤를 따라
적진에 뛰어 들었다. 그러나, 적은 돌파구를 찾아내어 감쪽같이 정글 속으로 사라졌다.
이때 미처 달아나지 못한 적 3명은 이들에게 사살되고 기관단총 2정과
소총 1정을 노획하였으나, 적이 도망가면서 던진 수류탄에 의하여
김길성, 백승길 일병 등이 파편상을 입고 후송되었다.

이 소식에 접한 제6중대가 병력을 긴급히 그쪽에 보내어 포위망을 형성한 후
수색을 실시하였으나 적은 이미 달아난 후였다.
다음날은 아침부터 흐리더니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오후부터는 더 기상이 나빠져 비바람까지 휘몰아쳤다.
별다른 상황없이 이 날은 흘러갔다.



12월 6일.

제1대대는 별다른 성과없이 정밀수색을 마치고 일몰 무렵에 기지로 복귀하였다.
그런데, 돌아오던 도중에 제3중대 제2소대 제3분대가 1개분대의 베트콩을 발견하여
집중사격 끝에 적 3명을 사살하고 문서 등을 노획하였다.

그리고 밤 1130분경 야간매복진지에서 적을 발견, 2명을 사살하고
기관단총 1정을 노획하였다. 제2대대장은 제7중대를 혼바산 북쪽부분을 탐색시키는 한편
제5중대와 제6중대를 그 서쪽으로 연한 선에 전개시켜 정밀수색을 실시토록 하였다.
11시경 제7중대의 화기소대 선임하사관 김경성 중사와 노동오 일병이 암석지대에서
사람이 지나간 흔적을 찾아내고 부근을 샅샅이수색 하였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그리하여 다음 행동으로 옮기려는데 노동오 일병이 무슨생각에선지
수색했던 곳으로 되돌아가 기둥처럼 생긴 바위를 흔들자, 바위가 움직이는 것이었다.

"선임하사관님, 빨리 와보세요! 이 바위가 흔들립니다."

노일병은 다급한 목소리로 김중사를 불렀다.
김중사는 즉시 달려와 노일병이 가리킨 바위를 흔들어 보았다.

"이상한데? 바위를 옮겨보자..."

김중사는 소대원 5,6명을 불러 바위를 들어올렸더니
그 밑에 사람이 들어갈만한 구멍이 뚫려있는 것이 아닌가.

"야, 이것 봐라. 노다지 구멍이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현장에 달려온 소대장은 선임하사관을 특공대장으로 하여
노동오 일병을 포함한 체격이 작고 담력이 강한 병사 3명을 선발하여
그들에게 수류탄과 대검, 그리고 밧줄 등 탐색에 필요한 장구를 갖추게하여
동굴 속에 진입시켰다. 특공대원이 어둠 속을 더듬으면서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내부가 너무 깊어 깜짝 놀랐다.

천연적으로 바위와 바위 사이에 생긴 동굴인데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바위틈을 보니, 확실히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 있었다.
따라서 이곳에 적이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철저한 엄호대책을 세우면서
한발 한발 밧줄을 잡고 내려갔다.

무려 40m정도의 깊이까지 내려갔을 때,
그곳에 또다른 두 갈래의 동굴이 천정 쪽으로 나 있었다.
신임하사관은 부하 2명과 같이 우측 동굴로 올라가고,
좌측 동굴은 김영배 하사와 최상돈 일병으로 하여금 올라가게 하였다.

약30m 정도를 올라가니 다시 밑으로 뚫린 통로가 있었다.
다시밑으로 내려가 보니 인기척이 들렸다.
김영배 하사는 적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하고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으려고
오른손의 밧줄을 놓았다. 그리고 수류탄의 안전핀 고리에 인지를 넣었다.
바로 이때 선임하사관조도 적의 인기척을 느끼고 결전태세를 갖추었다.

선임하사관은 월남어로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백마용사다. 손들고 나와라..."

그런데 웬일인지 베트콩의 응답대신

"선임 하사관님! 김영배 하사입니다..."

라는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때서야 각각 다른 동굴로 올라갔다가
막다른 동굴에서 마주친 것을 알고는『하하하하하...』웃음을 터뜨렸다.
긴장했다가 전혀 뜻밖의 일이 벌어졌으니웃음을 참을 길이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다시 만나 뜨거운 악수를 서로 나눈 다음 다시 내부를 정밀수색하였다.

동굴 안은 칠흑같이 깜깜한 것이 아니고,
바위 틈틈으로 가냘픈 햇살이 스며들기 때문에 어느정도 행동의 자유는 있는 편이었다.
이때 20평 정도의 넓은 광장이 나타났는데 웬일인지 이상한 냄새가 풍겨왔다.

순간 선임하사관은 대대에서 하달한 지시공문이 떠올랐다.
며칠전 제5중대 제3소대에서 적의 무기고를 발견하였을때 '이상한 냄새가 났었다'는
말이 떠오른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에 무기고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그렇다. 이곳에도 적의 무기고가 있을 것이다."

선임하사관은 자신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주변을 살펴나갔다.
그리고 냄새나는 쪽으로 한발 한발 다가갔다.

아니나 다를까...
벽 쪽에 흙을 바르고 위장한 곳을 헤쳐보니 소총이 수북이쌓여 있었다.
이리하여 선임하사관조가 35정을 찾아내고 분대장조가 40정을 찾아내어
모두 75정의 무기를 색출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들은 노다지를 발견한 것보다 더 기쁜 나머지 일제히 만세를 불렸다.

"만세! 만세! 만세!..."

혼바산 베트콩의 전투력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킬 수 있는 무기노획의 개가를 올린 것이다.

12월 7일에 연대는 작전명령 추가 4호를 하달하여,
오후1시부로 1개중대씩 원래의 기지로 복귀토록 하고 잔여병력으로
반복수색을 실시하도록 했다.



12월 8일.

제2대대 제6중대가 정밀수색을 실시하던 중,
제1소대 제1분대장 박동호 병장이 이끄는 탐색조가 천연동굴 안에서
소총 8정을 노획했다. 이것을 시작으로하여 제3분대 이상복 상병과 홍은억 일병이
각각 1정씩 노획하는 한편 제7중대 제3소대 또한 천연동굴에서 36정의 소총을
노획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이 탐색에서 제3소대 선임하사관 김정완 하사와 제2분대장 황덕순 하사가 21정을,
그리고 정상룡 상병과 이용환 일병이 각각 15정을 색출하였다.
그후 작전이 계속되다가 12월 29일에 본작전을 종결함으로써
총35일간에 걸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 작전을 성공리에 마침으로써 혼바산 일대 베트콩 주력의 전투력을
뿌리에서부터 뽑아버린 결과가 되어, 백마사단 제28연대 전술책임지역에 대한
평정사업에 크게 기여하였음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비록 베트콩 주력을 포착하여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지는못하였으나,
그들의 무기고와 탄약고에서 많은 양의 소총과 실탄을 노획하였음은
베트콩에게 인명손실 이상의 타격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특히 이 작전의 종결로 판랑에서부터 투이호아까지 256km의 1번도로가
개통됨으로써 백마사단은 명실공히 월남땅에서 강자로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이와같이 주월백마 제28연대는 험난한 산악지대로 둘러싸여 험하고 위험하여
월남도착 선상에서 부대배치를 할때 28연대로 배속되면 위로의 말을 들어야 했다.

"거기는 병력보충 하나마나...넌 이제 죽었다."



<끝>


자료제공:(
www.vietvet.co.kr )

제공:(vietvet.co.kr)


  0,국회의원 대 강당 세미나 참석
ㆍ작성자 이순구
ㆍ작성일 2012-05-24 (목).

“ 국회의원 대강당 세미나 참석..... ”
< 월남 참전 국가유공자의 공과와 예후 >

5월 21 일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에서 파월장병 학술 세미나가
파월전사 연구소 주관 대한민국 월남 참전자회 주최 로 약 2 시간가량 열렸다
많은 참전자와 또 중앙의 우회장님 임원진을 비롯한 우리 미망인 여러명도 참석 했다

이날 보훈학회 유영옥 경기대 학장님 박헤란 박사님 배제대 권기숙 제성호 중앙대 교수님들께서
주제 1 월남 참전 국가유공자와 타 국가유공자와의 형평성 문제와 예후라는 주제로
주제 2 베트남 참전 유공자의 평가에 대한 고찰이란 주제로 토론과 발표가 진지하게 열렸다

특히 이날 유영옥 학장님께서 전쟁이 끝난지 48여년
그 전쟁으로 인해 아직도 치유 할수없는 질병을 안고 살아가는 고엽제후유(의) 증 환자는 물론 끔직한 질병이 2 세까지 이어지고있는 사회적 문제이지만 이들에 대한 국가보훈정책은
실질적으로 합당한 에후와 보상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독립유공자 . 4.19 . 5.16 . 과 는 너무나도 다른 형평성이 떨어지는 잘못된 보훈 정책 이랍니다
유영옥 학장님이 말씀 하시길 다른 국가유공자 비유해서 적어도 참전자의 연금은
60~70 만원이상 지급 되어야 마땅 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 월 12 만원 이라뇨 ! 그것도 생존자에 한해서
독립유공자는 연금을 3 대까지 지급 한답니다
어쩌면 4.19 5.16 은 사회 유공자라고 해야 마땅하고 월남참전자는
진정한 국가유공자라로 인정 해야 된다고 역설 하셨습니다 ( 신변의 위험을 각오하시며 )

그때 참전장병들의 위험 수당을 정부에서 가져가 국가 기간산업 등에 투자해
당시 GNP 167 불에서 이제는 3 만불 시대 어려울때 나라에서 가져간 위험수당을
이제는 돌려줘야 한다는 말씀에 참석자들 모두 우뢰와같은 박수를 보냈읍니다
제가 알기로는 학장님은 신변에 위험을 무릅쓰고 ( 주위의 반대세력 )
국가유공자 문제등을 연구하며 지금까지 보훈학회를 이끌어 가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의 재산과. 권리를 . 찿아야 되지 않갰습니까
저는 그날 발언할 기회가 주어져 미망인들의 실상을 아픔을 토했습니다
제 심정 미망인들의 삶에 지친 모습들을 적어 복사해서 그날
강사님 들과 일부 참석자들에게 나누어 드리고 마이크를 잡고 눈물어린 호소를 했읍니다
일부 참석자들과 강사진도 울었다는 이야기를 끝나고 나니 여러분이 말씀 하시데요
아마도 미망인들의 아픔의 공감대가 형성 되는게 아닐까요 이제는 우리들 혼자가 아닌가 봐요

특히 박혜란 박사님은 단상에 오른후 조금전 어느 미망인의 아픈 사연을
적은 글을 읽고 너무도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났다고 했읍니다
얼마전 까지도 미망인들의 존재 자체를 주위 누구도 거의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조금씩 인식 하는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 합니다

장애인 독거인 노숙자만도 못한 대우를 받는 .... 후유의증 환자의 유족은
평생을 병들어 살다 그 마저 남편 먼저 보냈지만 정부에서 단돈1원의 지원도 없고
더구나 먼저 이 세상 떠난것도 억울한데 사망자는 그 몇푼의 돈마저 그날로 중단되고
임대주택 하나 청약할 자격이 없고 생존자만 해당 된답니다

어제 아침에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임대주택 청약등 그게 사실 이냐며
어떻게 미망인들을 그렇게 내팽개 쳤냐구요 그분은 울먹이며 정말

이 나라 보훈 정책이 썩어 빠졌다고 분개 하시며 살아있는 전우로서
앞서 가신 전우와 가족에게 미안하다며 용기를 갖고 살라고 하시데요
세상에 어느 남편이 처자식 두고 병들어 먼저 떠나고 싶겠읍니까
모든짐 짊어진 우리 미망인들 너무도 가엾고 아픔니다

아무리 죽은자는 말이 없다지만
이 나라의 보훈 정책 너무도 야속 합니다
또 생존자의 월 12 만원 지원금도 65세 이상이래요
목숨건 전쟁터에 보낼때 나이 순서로 보냈습니까

유영옥 학장님 말씀 하셨읍니다
이 나라 산재 환자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있는 참전자들
그렇다면 그 누가 나라를 위해 목숨걸고 전쟁에 나가 겠는가....
이제 시작이다 권리를 찾아야 한다구요


<FONT size=4></FONT>


최해영 13-01-20 16:29
답변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위하여 군에 입대를 할때 후일에 자신이 국가유공자가 되기위해
군입대를 하는사람은 없습니다.
또 월남전에 참전을 할때에 자신이 국가 유공자가 되어야겠다는 사람또한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방법으로 월남전에 참전을 했고
남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그몹쓸 고엽제에 피폭이 되었어며
남들이 죽은 방법 그대로 죽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만이 고엽제에 피폭된자들을
"고엽제 후유증"과 "고엽제 후유의증"으로 분리를 하여
고엽제 후유증은 국가유공자로 고엽제 후유의증은 그냥 별볼일없는 환자로 취급하여
생전에 약간의 수당을 주다가 사망후에는 그 어떤 지원도 해주지를 않고 있습니다.
생전에 병의 아픔이나 고생이 후유의증이 더심하고 그병을 간병하기위해 그 부인들의 희생의
참상과 생활고는 이루 말로서 다 표현을 못할 정도이지요.
이글을 작성한 "이순구"님도 후유의증으로 고생한 남편의 병수발을 하다가 그 남편을
저 먼 세상으로 먼저 보낸 우리나라에서는 흔하디 흔한
고엽제 후유의증의 미망인 입니다.
남편생전에 아예 이혼을 하고 병수발을 했더라면 생활보호대상자가 되어 그러한 혜택이라도
받을수가 있었지만 생전의 남편과 그러하지도 못하고. . .
월남전에 참전한 사람의 대부분은 자신의 부인이 이글을 쓴 "이순구"님과 같을수가 있다는
생각으로 갖이고 많은 생각을 해야 할겄입니다.
생각을 많이 해야할 글을 올려주신 "가을하늘2"님께 감사함을 표합니다.
올해도 늘 건강하셔서 좋은글을 많이 올려주시길 기원드립니다
^^
                     제공자:ㆍ(작성자 이순구회장)
 

파월의 날 ?

우리 정부는 당시 월남공화국(이하 ‘월남’이라 한다)참전이 지니는 성격을 대국적인 시야에서 예의검토한 끝에, 우리의 국가안전을 더욱 공고히하며 자유우방의 결속된 반공노력에 크게 기여하겠다는 견지에서 그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고, 헌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국회에 그 동의를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다행히 국회의 동의를 얻어 월남파병은 우리의 국가의사로 확정되었습니다.

한국 역사상 최초로 월남을 돕기 위하여 세계평화와 자유수호의 십자군으로 참전하게 된 것이며 월남전 참전자는 단 하나의 귀중한 생명과 젊음을 초개와 같이 내어 던지면서 1964. 9. 11~1973. 4. 3.까지 8년7개월동안 연병력 312,848명(1965년-1972년)이 해외 파견군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고귀한 희생

「의사일정(제3차본회의) 1. 派越국군 귀국보고 전략 2. 派越국군 귀국보고 ○의장 丁一權 다음은 의사일정 제1항 派越국군 귀국보고를 상정합니다. 李世鎬 전 駐越국군사령관 나오셔서 보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전 駐越국군사령관 李世鎬 존경하는 丁一權 국회의장님 그리고 의원 여러분! 전 駐越군사령관이었던 육군중장 李世鎬입니다. 중략 제5쪽 駐越軍은 8년간 대대급 이상의 대부대작전 1,171회와 57만6,000여회의 소부대 활동을 실시하여 적 사살 4만1,462명 포로 4,633명 무기노획 2만972점등의 전과를 거둔 반면 전사 3,844명 전상 8,344명과 비전투손실 3,738명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음을 가슴아프게 생각하는 바입니다.」과

수 많은 전상자의 희생으로 한국군의 강인함과 우수성을 세계만망에 과시하고 애국충정을 다하여 국위를 선양함은 물론 한국은 파월을 통해 공산 침략하에 있는 월남에 직접적인 원조를 제공함으로서 6․25동란시 동일한 위험에 직면했던 한국을 위해 싸워준 자유우방의 원조에 보답함과 월남전선을 국제공산주의 침략을 방어하려는 자유민주주의와의 싸움터로서 한국 전선과도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는 우리의 제2전선이며 월남전은 아세아의 평화와 우리나라의 국가안전 보장에 직결되어 파월한 것입니다.

미국의 군사원조 및 경제원조가 국가 경제건설에 초석을 이루었으나 개선 귀국한 후 월남전의 연장선상에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고엽제후유(의)증 피해와의 전쟁으로 희생의 전흔이 이시간에도 겹겹이 쌓여가는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안타가운 현실을 국가는 외면한 채 그 고통과 책임을 월남 참전자에게 남겨놓은 몫으로 감당시키려는 현실과 자유 수호전쟁 및 세계평화를 위한 정의로운 십자군으로서의 월남참전을 명분없는 전쟁이니, 용병이었느니, 심지어는 유감이라는 등의 왜곡매도한 일부 지식인들의 용공적이고 소신없는 매국적인 작태를 규탄합니다.

우리가 월남전에 참전한지도 48주년이 지났습니다.

더 늦기전에 월남전 참전자와 그 유족의 명예회복과 지원을 함으로써 이들의 생활안정을 도모하고 국민화합에 이바지하려는 것은 국가유공자로 예우받는 것입니다.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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