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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컬럼
작성자 정근영
작성일 2011-09-19 (월)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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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강컬럼(18)‘4.3사건’ 60주년에 이명박 정부에 고합니다.
작성자 인강
작성일 2008-03-12 (수) 21:42
분 류 인강
추천: 2  조회: 1035       
‘4.3사건’ 60주년에 이명박 정부에 고합니다.
비명에 혈육을 잃는 그 이상의 슬픔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 혈육을 잃었던 슬픔이 연좌제의 구실이 되어 후손들까지도 설상가상의 괴로움을 감수해야했다면 그 가문의 고통은 어떠했겠습니까? 이와 같은 고통이 제주도의 4.3사건을 통해서 발생되었었고 육지에서도 6.25전쟁을 통해 북한 인민군이 점령한 지역에서 경험됐던 비극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연좌제의 피해는 없어졌습니다만,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과 자유를 지켜야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참으로 있을 수 없는 불행한 과거사였습니다.

이와 같은 국민들의 불행을 명예의 회복차원에서 풀어 보려고 각종 과거사법이 제정되고 추진되었다고 봅니다만, 명예회복에만 중점을 두다보니 국군과 경찰은 양민학살의 주범으로 몰리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부정되는 듯한 묘한 분위기가 생겨나더니, 급기야는 시위현장에서 불법 시위대의 매를 맞는 경찰과 군 장병들의 모습을 바라보아야하는 좌절의 순간까지 있었습니다.

‘4.3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위원회’에서 국방부 및 경찰 측 추천위원으로 국무총리의 위촉을 받고 2000년 8월부터 활동했던 3명의 위원(김점곤, 이황우, 필자)은 ‘4.3사건’ 과정과 전후의 배경과 사실에 입각하여 국군과 경찰의 공과(功過)를 대변했으나 진상조사보고서에 반영되지 못하자 부동의(不同意) 서명을 하고 동반사퇴를 했던 것이며, 노무현 대통령은 균형감이 결여된 진상조사보고서를 기초로, 2003년 10월 31일, ‘4.3사건’과 관련하여 남로당의 불법을 지적하지 않은 채, 정부차원의 공식사과를 했던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4.3사건’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발생한 힘의 공백지대에 소련군과 미군의 진주 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는 과정에서 발생하여 건국과 6.25전쟁기간을 거쳐 한라산의 마지막 공비 오원권이 체포됐던 57년 4월 2일까지 만 9년 동안이나 지속됨으로서 연구자의 입장과 시각에 따라 부르는 호칭도 ‘난리’ ‘소요’ ‘사태’ ‘사건’ ‘봉기’ ‘항쟁’ ‘폭동’ ‘반란’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났습니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당시에는 전혀 몰랐으나 소련의 붕괴(91.12.24) 후 발굴된 자료에 의해 확인된 것으로, “한반도에 부르좌 민주정권을 수립하라”는 소련군 최고 사령관 스탈린의 비밀지령이 소련군의 북한 점령 직후에 하달(#주1)되었었으며, 이에 따라 스티코프 상장(주#2)의 책임 하에 김일성을 정점으로 한 단독정부수립 작업이 신속히 추진되어 북한의 실질적 정부 수립(북조선 최고인민위원회 구성: 47.2.21)은 대한민국 정부수립보다 1년 6개월이나 앞섰던  것입니다.

반면에 남한에 진주한 미군은, 최초 특정정책 없이 자유민주주의 원칙하에 공산당(남노당)도 허용하는 중립적 태도로 질서유지에 주력하다가 공산세력의 강화를 허용하면서 좌·우 충돌의 격화를 불러, 47년 10월의 대구 폭동이나 48년의 제주4.3사건과 같은 무력충돌은 이미 예견되었던 것이며, 군과 경찰이 사건통제에 실패했다면 전국으로 확산도 충분히 가능했던 것입니다.

북한엔 이미 실질적 단독정부가 수립된 상황에서 남쪽에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게 되면 설 자리를 잃게 될 남노당(박헌영)의 입장에서는, ‘4.3사건’의 폭발은 불가피한 선택일 수밖에 없었으며, 제헌국회의원 선거(48.5.10)거부와 대한민국 정부수립 저지 목적의 무장폭동을 을 경찰탄압에 대한 항거로 미화하며, 선전했던 것입니다.

48년 4월 3일 새벽 2시, 한라산의 봉화 불을 신호로 제주도의 12개 경찰지서에 대한 인민무장대의 습격과 우익인사 테러로 시작된 ‘4.3사건’의 초기국면은 미 군정하의  해방공간에서 발생했던 것이기에, 오늘에 와서 심판의 기준이 명확하지  못하다할지라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대통령이 발령한 계엄령(48.11.17)하에서도 계속된 폭동은 대한민국의 헌법에 따른 국법질서의 유지차원에서 접근해야한다는 것이 군과 경찰을 대변하는 4.3위원 전원의 공통적 관점이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거부하고 파괴하려는 공산주의자들의 기도는 간과한 채 일부의 실수와 과오가 있었던 진압과정에서의 민간인 피해에만 초점을 맞추어 정부차원의 공식사과를 했던 것입니다. ‘4.3사건’연구자로서 괴로웠던 것은  국민의 생명과 인권차원에서 정부차원의 공식사과가 필요했다면, 토벌작전의 필요성도 언급한 후 무고한 희생에 대한 사과를 해야 했으며, ‘4.3사건’보다 300여배의 희생을 초래했던 북한 독재정권의 6.25남침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는 발언이 필요했음에도, 화해와 협력만을 위해 침묵함으로서, 국가를 위해 개인의 생명을 바치는 국군과 경찰의 존재가치가 부정되는 아픔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부차원 사과는, 군·경의 입장과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민간인 희생자의 명예회복에만 중점을 두고 작성되었던 잘못된 ‘4.3 사건 진상조사보고서’로부터 연유하며, 국방부와 경찰추천의 4.3위원 전원이 동의(同意)서명을 거부하고 항의의 뜻으로 집단 사퇴했던 내용임으로,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함께 반드시 시정·보완의  계기가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보다 앞서 더욱 시급한 것은 건국 60주년을 앞두고 곧 완공되어 개방될 ‘제주 4·3평화공원’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들리는 바로는 ‘4.3사건’당시, 인민무장대 의 훈련장이었던 제주시 봉개동의 12만 평 대지에 900여억원의 정부예산으로 조성되는 ‘제주 4.3평화공원’에 군법회의의 확정판결을  받았던 사형수와 무기수들의  개인별 위패까지 진열된다고 하는바, 평화의 도시인 제주도를 방문하는 국내외의 귀빈과 관광객, 특히 수학여행을 오고 가는 학생들의 참배가  이루어질 때,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관련하여, 앞으로 어떤 현상이 파생될 것인가에 대하여 정부 당국의 신중한 검토가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검토대안으로 4.3사건의 진압과정에서 생명을 잃었던 국군과 경찰의 명예도 인정되도록, 군과 경찰의  별도 홍보물 제시도 고려될 수 있을 것이며, 지금으로부터 10년 전(97.5.26)의 북한 노동신문에 대서특필되었던 북한 대남공작의 찬양보도(주#3)내용을 이번 기회에 각급 기관과 언론을 통해 전파함으로서 소련의 북한진주와 함께 시작되었던 ‘대남공작’이 소련의 붕괴 후 오늘까지도 지속되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에 대한 ‘철경만대’(주# 4)의 계기로 활용될 것을 희망합니다.  

                ‘철경만대’의 거울이 될 기타 사실 몇 가지

1. 스티코프는 46년 9월초, 박헌영으로부터 “사회단체”의 지도요령에 관한  문의를 받고 “테러와 압제에 항의하는 대중적인 시위를 벌이고 항의집회를 개최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박헌영에게 2차에 걸쳐 일화 500만 엔을 지원했다. (주#5)

2. 박헌영은 1946년 7월초에 김일성과 함께 모스크바로 가서 스탈린에게 남한 정세에 대한 보고를 한 후 “어려운 여건 속에서 분투하는 그대의 혁명투쟁을 높이 평가 한다”는 격려를 받았다. (주#6). 귀국한 박헌영은 폭력전술을 채택, 46년의 9월 총파업과 10월 대구 폭동을 일으키며, 해방정국을 혼란으로 몰고 가다가 정판사 위조화폐사건의 주범으로 몰리자 10월 6일 미군정의 체포령을 피해 월북했다.

3. 남북은 동일화폐를 사용하다가 북측은 소군정 명령으로 화폐개혁(47.12.1)이 남쪽(48.4.25)보다 5개월이 빨랐다. 화폐개혁 계획시점으로부터 몰수 및 불용자금은  정판사의 위조화폐와 함께 해방정국의 공작금으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 필자주)

4. 제주 현지답사 기사 한 토막 : “48.4.30일 현재, 25개 경찰관서 습격, 경찰과 그의 가족, 경찰에 협력하는 양민의 납치살상만 115명. 무장대는 각 읍면에 중대편성의 인민해방군을 편성, 순경 1만원, 형사 2만원, 경위 3만원의 현상금으로 살해를 촉구하며, 각 읍면 촌락에는 후원대를 조직하여 물자를 공급하고 목포에까지 김일성군이 내도했으니 안심하라는 선전술을 펴고 있다.” (주#7)

5. ‘제주 4.3사건’의 주동자 김달삼은 남로당 선전부장 강만석의 사위로서, 사건발발 4개월 후, 북한 해주에서 개최된 남조선 민족 대표자 회의에서 폭동의 결과를  보고하면서 "우리 조국의 해방군인 위대한 소련군과 그의 천재적 영도자 스타린 대원수 만세!"를 불렀다. (주#8) 6. 김달삼의 가묘가 평양 근교의 애국열사능에 ‘남조선 민족 혁명가’의 비명을 받고 안장되어 있음이 2000년 3월, 감귤보내기로 평양을 방문했던 우근민 제주도지사에 의해 확인되었다. (주#9)

                                       맺는 말씀

미.소군이 남북에 진주했던 해방정국 기간의 상황주도권은 완벽할 정도로 북쪽의 차지였습니다.  한반도의 부동항을 노리며 일본군의 무조건 항복을 일노전쟁으로 빼앗겼던 종주권의 회복 기회로 활용하려했던 스탈린의 야심이 있었고 엄청난 규모로 확보 가능했던 대남 공작금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과거에의 집착으로 미래로 가는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됩니다만, 과거로부터 교훈을 찾아내지  못하면 잘못된 역사가 다시 반복된다는 우려에서 오늘의 상황을 바라보는 참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과거 사실 몇 가지만을 제시 해 본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자유민주주의의 높은 이상을 간직한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집념과 지혜로 건국된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에 있으며, 6.25전쟁의 잿더미위에서 온갖 대내외의 도전과 장애를 극복하며, 세계사에 유례없는 오늘의 발전을 이룩해 온,  온 국민들의 피와 땀과 눈물,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오늘의 대한민국 발전에는 바로, 제주도의 민간인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담겨져  있음으로, ‘4.3사건’ 60주년에 즈음하여,  설상가상의 고통을 겪으셨던 분들에게 심심한 경의를 표하며, 국가로부터 그리고 국민들로부터 깊은 이해와 따뜻한 배려가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리고 온 국민이 소망하는 통일도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창달될 때에만 그 가치가 있는 것임으로, 북으로부터의  핵위협은 미국을 비롯한 자유우방과의 공조로, 그리고 북으로부터의 대남공작은 온 국민이  함께하는 ‘철경만대’의 자세로 막아내는 가운데 선진조국을 향한 이명박 정부의 앞날에 만사형통(萬事亨通)의 축복만이 가득하기를 빕니다.
(이 글은 육군사관학교 동문들과 제주도 재향 경우회원, 그리고 베트남 참전 전우들의 도움을 받아 완성되었습니다.)  
                                                              2008.3.3.11.                
                                    (전) 4.3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 회복 위원회 위원

======= 각주 =======


이름아이콘 인강
2008-04-02 10:29
비밀번호가 잘 못 입력된 탓인지 수정을 할 수가 없습니다.
본문 3항의 북한 화폐개혁부분을 다음과 같이 바꾸었음을 참고바랍니다.

3. 북한은 ‘북조선 인민위원회’의 경령(47.12.1)으로 화폐개혁을 은밀히 단행, 화폐개혁 구상 시점으로부터의 엄청난 불용 및 몰수자금을 남한에 대한 정치 공작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었으며,  이 사실을 뒤늦게  감지한 남한은 뒤늦게 대응함으로서 해방정국의 정치경제 주도권은 상당기간에 걸쳐서 북한이 장악하였다. (# 필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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