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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참전기
작성자 정근영
작성일 2015-05-06 (수)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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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구수정을 향해 던지는 사자후( 1 ) -( 6 ),맺는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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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 *구수정을 향해 던지는 사자후( 1 ) -( 6 ),맺는말) (2015-05-06 06:07)
      * 구수정을 향해 던지는 사자후( 2 ).  
 

2.구수정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결정적이고, 객관적인 이유

 

 

[1]구씨의 주장에는 대량 학살을 입증할 그 당시의 공인이 될만한 구체적 증거와, 결정적 물증이 없다.

 

[]형사법적 사건 사고 뿐 아니라 사회에서 발생하는 어떤 일도 사실을 규명 할 때 그것을 입증할 증거가 있어야 한다. 객관적 증거를 얻지 못하면 그 사실들이 진실이라고 단정 될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군에 의해 9천명 이상이 대량 피해를 입었다는 베트남 양민 학살에 대해서 구씨는 국제법 상으로 이를 입증할 책임을 갖게 된다.   베트남 당국과 마을 사람들의 순전한 자금에 의해 건립된 박물관과 그곳에 1200여점의 관련 증거물들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에 국내외 관광객이 모인다는, 미군에 의해 504명이 피해를 입었다는 썬미 성지 마을에서 발생한 미라이 학살 사건 처럼,  세계 전쟁사가 공인하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물증을 제시 해야 할 것이다.

 

[]구씨가 어설프게 내놓는 위령 비석들은 1992년 한-베 수교 이듬해 구씨가 베트남에 들어온 이후에, 그녀를 후원하는 사람들이  자금을 지원해 주로 만들어 진 것들이며소위 마을사람 증언이라는 것도 전쟁 당시 7-8세의 어린 나이 였던 사람의 말이라 신빙성을 가늠키 어려워 객관성이 전혀 없는 불명확한 주관으로 채워져 있다증언 이라는 것도 뒷 받침되는 합당하고 보편 타당성 있는 객관적 근거나 증거가 있어야, 그 증언이 효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2한국군이 자행한 것으로 판명된 대량 양민 학살에 관계되는 최종의 세계적 베트남 전쟁사나, 당시의 국내외 언론 보도와 여론등의 공인된 기록이 없다.                                                                              

[]천인 공노할 많은 숫자 9 천명이 넘는 무고한 양민들이 당시 학살 피해를 당했다면,   504명의 미군에 의한 미라이 학살에도 분노의 소리를 퍼부었던 세계 언론과 여론들이 엄청나게 큰 난리를 쳤을 것이고세계 각국의 언론 매체들이 대서특필로 한국의 만행을 연일 맹 비난 함은 물론한국과 미국, 사이공 정부간에 국제적 외교 문제로 크게 비화돼, 결국  한국군 전체의 신상에 큰 위협이 됐을 뿐 아니라,

사이공 정부의 전체 국민들이 "따이한 고 홈"을 외치는 데모와 그에 대한 신문 기사가 천지를 뒤 흔들었을 테고 

 

 []그때의 그 국제적 만행 기록과 언론 보도 자료들이 오늘날 까지도 그대로 남아서, 국제 무대에서 한국 우리들의 발목을 움켜 잡고 있을 것이다.   이제, 구씨는 근거가 없는 허무맹랑한 주장이 아닌, 세계 전사나 당시 언론에 확정 된바 있는 한국군의 대량 양민 학살 사건에 관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그리고 신뢰성이 있는 공인된 국제적 입증 자료들을 제시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거짓 사실들을 유포해 월남 참전자들과 국가의 명예를 짓?아 버린 행위등에 대한 엄중한 법적 책임을 면키 어려을 것이다.

 

(3)한국군에 의해 학살 피해를 입었다는 마을들은 한국군의 작전 책임 관활 지역이 아니다.

 

[]구수정씨가 학살 마을로 명시한 지역은 한국군 작전 책임 관활 지역이 아니고, 월남 사이공 정부군 22 사단 41-47 연대 작전 책임 관활 지역이 었다. 당시 중부 지방 격전지 고보이 평야, 뚜이호아 평야, 이 일대는 험준한 산세 지형을 거점 삼아 주둔했던, 북쪽 하노이 정부군과 남베트남 민족 해방 전선의 군사적 전위 부대(VC) 총 사령부의 군량미 조달 라인으로 이용 되었던, 곡창 지대 였던 관계로 월남 사이공 정부군 중 연대 본부 수가 가장 많은 사이공 정부군 22 사단이 전원 투입되어 작전을 총 책임 맡아 직접 관활 하고 있었다.

 

[]당시 이 지역은 작전상 가장 중요한 군사 요충지 였기 때문에, 사이공 정부군 주도하에 한,,월남군이 합동으로 상호 지원하며 주로 연합 작전을 연계 수행 하였고전술 능력이 뛰어난 한국군은 사이공 정부군의 요청에 따라,  북쪽의 민족 해방 전선 전위 부대 게릴라 전사들이 전부터 완전히 장악 하고 있었던,   이 지역을 완전히 평정, 회복 시킨후, 미개통 1번 국도와 간선 국도의 개통광활한 곡창지대 경계농민 재산 보호등의 방어적 작전 개념으로 작전을 전개 하며 대민 지원 업무에 주력 하였다대민 지원의 성과로 인한,  빈딩성의 각 마을 주민들에 의한 한국군의 근무 지역 이동을 반대 하였던 당시의 청원서들이 지금도 보도 자료로 남아 있다.                                                                                                                                     구수정이 말한한국군에게 적개심을 가졌던 마을과 그 마을에 살던 양민들은 베트남 격전지인 빈딩성과 푸이엔성, 꽝응아이.꽝남성, 그곳에는 그 당시, 적색 마을에 사는 민간인 게릴라 전사 (VC )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4)감춰질수 없는 공개된 전쟁터라 비밀이 보장 안된다.

 

[]각 전선, 특히 중부 지방 격전지 마다에는 특종을 사냥 하려는 세계에서 모인 종군 기자와 베트남 유력 언론 매체들이 틈만 나면 진을 치고 늘 대기 하고 있었는데,  언론 활동이 아주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전쟁 상황이라 남쪽 사이공 정부 각 지역의 성장과 군수들은 군 고급 장교들이 책임자로 임명되어 있었는데, 그들은 담당 지역의 민원 행정과 군사 작전 체계의 원활한 융합을 유지할 목적으로,  관활 지역에 산재해 있는 외국 연합군의 월남어 가능 연락 장병을 각 군청에 상주 시켜,  관내 군사 작전 현황 파악과 관련 업무의 상호 협조를 일상으로 실시 하고 있었다.

 

[]베트남인들은 그 당시에도 양민 학살 같은 인명 피해는 말 할것도 없고 자신의 재산등에 부당한 피해를 입으면 두려움 없이 그들의 관청에 바로 달려가 항의로 문제를 제기하는, 그런 용감성(?)을 가진 민족이다.

예를 들면 자신이 기르는 소 한마리가 연합군의 차에 약간 다쳐도 관청에 신고 하고 소문을 내어 가해자를 찾아 낸후 소 한마리 값을 반드시 보상으로 받아 낸다. 또 다른 예중 하나는 야간 작전중 총에 맞아 죽은 소도 어김없이 군부대로 찾아와 소값을 받아 갔는데, 채 사령관의 방침에 의해 좋은 뜻으로 소값의 2-3배를 물어 주었다.

 

[]베트남 사람들의 주저함이 없는 적극적인 성격과구수정 처럼 무조건 한국군에게만 편향적이고 악의적으로 뒤집어 씌우는 학살 주장.  이것을 대표 할수 있는 사건의 한 사례를 소개하면; 

 

월남의 중북부 꽝남 지역의  퐁니,퐁?이라는 부락에서 ( 미군이 지원 해주던 피난민의 전략촌 마을로 추정) 월남인 74 명이 희생 되는 사건이 일어 났다. 그러자 마을 주민들이  베트남 언론에 공개 한후, 행정 관청에 달려가 어떤 사람들은 "한국군 복장을 한 군인들이 마구 총을 쏴 사살 했다고" 또 다른 어떤 이들은 "하늘에서 갑자기 큰 포탄 수발이 날아와 마을에 떨어지면서 사람들이 죽었다" 그러면서 소리질러 아우성을 치고는, 사이공 정부와  국회 고위층 요로에 탄원서를 제출 하는등의 격렬한 항의 시위를 하므로서  월남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이 탄원서의 내용들은 미국의 군사 전쟁 문서에도 기록 되었고, 한국군 부대가 관련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외교적 풍문에 따라, 박정희 대통령과 한국군 당국의 특명에 의해 그 당시 마을 주변에서 작전을 수행했던 청룡 부대 장병들이 여러차례 군과 한국 정부의 전문 조사 기관들에 불려가서 강도 높은 집중 조사를 받았으나,   그날 북쪽의 상대방군이 북으로 부터 호치민 루트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와 은둔해 있었던 그 산 중턱에 쏟아부을, 함포 사격의 관측을 위해 그곳에 배치 되어 있던 미군들과 함께 주변의 수색 임무를 수행 하던 중, 관련 마을 입구에서 부비츄랩으로 아군들이 피해를 입자, 진입 허가를 받은 명령에 따라 진상 파악을 위해 마을 안으로 정찰 하면서 통과 했을 뿐이라는 대체적으로 일관된 해당 장병들의 진술들로 인해, 정확한 진상을 규명하지 못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월남 사이공 정부와 미국은,  주월 미군 사령관 대장 웨스트 모오렌 장군의 요청에 의해 미,월 군사 합동 특별 조사단을 긴급 구성해,  사건 현장에서 심도 있는 물증 조사등을 오랜기간 수차례 벌였으나  한국군이 학살 사건에 연루 되었다는 확정적 증거를 얻지 못하고,  ----- -- 간간히 한국군이 근무하는 다른 작전 지역에서도 그러 했던 것처럼한국군 복장으로 위장한 상대방 군의 소행인지.  아니면, 월남 전쟁에서 대민 지원을 통해 지역 평정 임무를 성공적으로 담당하는 한국군의 작전을 근원적으로 방해 할 목적등으로, 월남전에 참전 했던 북괴 심리전 특수군 전투 요원들의 위장 전술에 의한 침투 공작 인지.   또는 한국군의 포대나, 미군 함대로 부터의 오인 포격으로 인한 피해 인지를?, ---- 장기간 실시된  이 사건의 조사는 그 원인을 정확히 밝히지 못한채  종결 된다.

이 사건 조사가 최종 결론을 얻지 못한 것은 위에 명시한 여러 원인적 정황들이 거의 동시에 발생 할수 있었던 상황의 개연성과 그에 따른 사건 현장의 주민과 주변 관계인의 진술이 서로 일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이렇듯 엄밀한 한국,월남.미국 군 당국들의 조사 과정이 있었고,  또한 당시 사이밍턴 미 상원 소위원회와 미국 정보 랜드 보고서의 자료 내용에 이 사건 의혹과 한국군에 대한 일반적 의견 개진 정도의 내용만 포함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수정과 그 동조 세력들은 이 자료들이 마치 한국군이 이 사건에 연루 된 것으로 확정하고 단정 한것으로  왜곡 하고는, 무조건 이 마을 사건을 한국군 양민 학살로 누명을 씌우는 못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중공의 모택동에 의해 베트남에 전수된 것으로 알려진,  게릴라전의 기본이 되는 " 물과 고기 " 전법은 베트남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 된다.   일찍이 주월 한국군 사령관으로 지명된 고 채명신 장군은 이 전법을 차단하는 전략 ( 고기는 게릴라,물은 인민 이라고 하면 고기는 물이 없으면 죽은거나 마찬 가지다.즉 게릴라와 양민을 분리 시킨다, )  의 성공 여부가 전쟁의 승패를 결정 한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베트남인을 돕고 그 사회에 가까이 가기 위해 대민 지원 업무를 적극 추진 해 나간다.   이 전략은 큰 성과를 얻는다,  베트남 사람과 거의 같고 농사일도 잘 하는 한국군에게 접근해 마을일을 의논하고 도움 받는 격전지 마을 주민들.  베트남 특유의 게릴라 작전의 독점적 전법을 역이용 하여 대민 작전을 성공 시키는 한국군.  그들 사이를 격리 시키고 양쪽의 신뢰를 깨트릴수 있는 심리 작전의 일환으로,  그동안 매번 허를 찔렸던 상대방군들은 위장한 한국군 복장을 하고 마을에 침투 하곤 하였다. ( 주로 맹호 작전 지역 ), 그 뿐 아니라 미그 전투기 부대와 심리전 특수 전투 부대로 월남전에 참전한 북괴군 심리전 전투 요원들이 한국군 군장과 한국말을 사용하며 한국군 행세를 하고 마을에 침투해 주민들을 희생 시키는역활을  전문적으로 담당 하기도 했다. (짜빈동 전투등을 포힘한 청룡 작전 지역)


 000: 월남전 당시 한국군을 주민들과 이간 시키려고 공산월맹은 대민교란작전을 폈는데,40년도 지난 이시점에 다시 종북간나들이 신성한 대한민국에서 설칠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세상이 하수상하니 반공정신이 많이 퇴락하고 있슴을 느낍니다. 바로 잡아져야 합니다. -[05/01]-
 000: 객관적 물증이 없는것은 진실 이라고 단정 될수 없습니다. 증언이라는 것도 뒷받침 되는 합당하고 보편타당성 있는 객관적 근거나 증거가 있어야, 그 증언이 효력을 갖게 됩니다. 어느 못된 사람이 구00 이라는 여자가 몸을 팔고 다닌다는, 여자에게는 치명적인 헛 소문을 근거나 증거도 없이 떠 벌리고 다닌다면, 나중에 세상은 그것을 진실 이라고 단정 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구 라는 여자는 못된 사람을 허위 사실 유포죄로 고소를 했고, 법원은 그 못된 사람이 자타가 공인 할수있는 근거와 물증을 제시 못하고, 그가 내 세운 증언자의 진술도 몸 판 사실을 뒷 받침 하는 보편타당성 있는 객관적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 입니다. 감사 합니다. -[05/02]-
 000: 504 명이 미군에 의해 학살 되었다는 미라이 학살 사건은 베트남 사람들과 정부가 성지로 지정하고, 1200 여점의 증거물을 전시한 박물관을 지어 국내외 관광객에게 양민 학살의 현장 이라고 대대적 알리 는데, 놀라울 정도의 양민을 대량 학살한 한국군에 관한 성지 대형 박물관은 베트남에 왜 없을가? 구수정 일당의 말을 믿는 사람들은 이점을 스스로 에게 물어야 한다. -[05/02]-
 000: 전술 능력이 뛰어난 한국군은 남쪽 사이공 정부의 요청에 따라. 북쪽의 남베트남 민족 해방 전선의 군사적 전위부대,베트콩들이 전부터 장악하고 있었던 퀴논의 빈딩성을 완전히 평정, 회복하고 방어적 작전 개념으로 대민 지원 군사 업무를 전개하는 멋있는 따이한 용사들이 었다. 감사 합니다. -[05/02]-
 000: 그야말로 孤軍奮鬪 하시는 강00 硏究員 戰友님!! 고맙습니다. -[05/02]-
 00: 그동안 수고하시고 인내한 보람이 있군요. 이제야 저들도 진실이 무엇인지 깨달을 것 같군요. 시작한 김에 귀한 자료들 모두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 모두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화이팅!!! -[05/02]-
 000 : 홍00 전우님과.김0 전우님, 그리고 베트벳 전우님들이 그동안 글을 쓰고 말들을 해 욌던 것처럼, 당시 자기들 지역에서 한국군과 만나고 교감 했던 베트남 사람 모두는 (적색 마을에 살던 사람들 말고) 그때 그 따이한을 그리워 하며 지금도 만나고 싶어 합니다. -[05/02]-
 000: 월남 최대의 격전지에서 용맹스럽게 싸우면서 대민 지원 업무를 성공적으로 이룬 결과, 한국군 부대의 지역 이동을 반대 하는 현지 각 마을과 그 주민들이 연명한 당시의 청원서가 보도 자료로 남아 있습니다.
구정이가 거짓말한, 한국군에게 적개심을 가졌던 마을과 마을 사람들은 적색 마을에 살던 민간 게릴라 전사들 외에는 월남전의 격전지 빈딩성.푸이엔성,꽝응아이성, 광남성에는 당시 아무도 없었습니다. 감사 합니다. -[05/02]-
 000: 저도 미국/국제 인터넷 사이트에서 당시 참전했던 많은 군인들의 수기를 읽고 있습니다. 오히려 같이 있던 미군들은 한국군의 군율이 아주 엄격해서 무서웠다고 하는 정도인데 전쟁범죄를 서슴치 않고 저질렀다? 너무 말이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게대가 타임즈지 기사에는 오히려 베트남 여자를 강간혐의를 받은 군인이 즉결처분 당했다는 기사가 올라올 정도로 군기를 잡고 민간인들을 보호하려는 군인들인데... -[05/02]-
 000: 그리고 베트남 출신으로 추정되는 유저는 한국군이 만행을 서슴치 않고 저질렀다는글을 쓰면서 두코 전투나 짜빈동 전투등의 한국군의 명백한 공로와 증거를 자기는 베트남에서 읽은 책에서 기록 되어있지 않다고 발뺌을 하더군요. 그리고 어느 전투에서는 한국군 700명(?)을 사살했다는 기록(?)이 있다는데... 대대이상의 손실이 있으면 기록이 명백이 되있어야 하는데 없는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 친구 덕분에 오히려 베트남쪽에서 과장되거나 날조된 문서가 많다는걸 알게 되었네요. -[05/02]-
 000: 참고로 같은 사이트에서 미군으로 참전했던 사람은 그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유저한테 가지도 않았으면서 책상뒤에 앉아서 말도 되지않는 소리를 하지 말라고 할 정도였네요. 이상하지 않나요? 정작 거기에 직접 있었던 사람들은 없었다고 하는데. -[05/02]-
 000: 구수정을 도와 처음 한국군 문제를 공개 하므로서 한겨레21 잡지를 유명지로 만들고 싶었던 고경태가 즐겨 사용하며 근거 자료로 인용하는 미국의 문서 기록 사이밍턴 소위원 청문회 보고서와 랜드 보고서 등에서 다루어진, 의견 개진 정도로 나왔던 한국군 청룡부대의 잔혹성에 관한 이야기들을, 국가관이 비뚤어진 고경태 일당은 위에 적시한 꽝남성 퐁니.퐁넷 사건이 이들 보고서가 마치 한국군 청룡부대의 소행으로 판명,단정 한 것처럼 왜곡해, 조작 시나리오를 만들어 누명을 씌운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당시 미국의 소수 국회의원들과 정가에는 군정을 주도한 박대통령 한국정부에 파월에 대한 댓가로 군원이 증가되는 데에 대한 불만이 있었고,용맹스렵게 싸워 큰 명성을 얻는 한국군에 대한 시기심도 존재 했습니다. 그래서 -[05/03]-
 000: 한국군의 잔혹성을 자주 거론 했는데,월남 전장의 특성을 들어 주월 미군 사령부는 현장을 모르는 사람들의 공연한 소리로 일축 하곤 하였습니다. 해병대의 기본 작전 개념은새로운 지역을 이동 하며 교두보를 확보 하는 것입니다. 판랑서부터 호이안까지 이동하며 진지를 구축하고,지형지물에 익숙 하기 전에 지역 베트콩의 공격을 받고,우군으로 믿었던 현지 주민의 속임수로 작전의 차질을 빋는등,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작전 승리를 이루지만,참으로 많은 전우의 희생을 치름니다. 특히 꽝남 지역은 호치민 루트와 바로 연결되는 적색 구역이라,월맹 정규군과의 작전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용감하게 잘 싸우니, 한국군 해병 복장으로 위장한 베트콩 부대와 북한 심리전 특전대의 한국군으로 가장한 활약이 심했던 곳이 청룡부대가 정착한 지역이라 할수 있습니다. 악 조건하에서도 군령을 지키며 적극적으로 싸우고, 당하면 반드시 댓가를주는 전투 수칙에 충실한 참전군이 한국군이 었습니다. 감사 합니다.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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