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 board
나의 참전기
작성자 初心
작성일 2009-01-20 (화) 19:49
분 류 특별
ㆍ추천: 0  ㆍ조회: 1618      
IP: 121.xxx.52
호이안 전선의 戰雲(0)-(1)-(2)


  0.추라이 전선의 포성 (내 머리위에 CV신관을 때려다오) (0)


전선의 울리는 포성

1967년 12월 츄라이 전선 청룡 제2802부대 상황실(FDC)

거기 있는 모든 무전기는 오픈되어 있었다.

대대장 김 해근 중령은 사색이 되어 작전장교 조 설현 대위를 다그친다.

“빨리 쏴, 서 용구 죽는다고, 뭘 해? 왜? 쏘지 못 하는 거야?”

진땀을 흘리며, 상황판을 노려보고 있는 작전장교는 핀을 손에 든 채

옆에 측지장교인 동기생 최 경환대위를 흘깃 바라본다.

“핀을 꼽을 때가 없습니다.” 측지장교가 대답했다.

“뭐야? 왜?”

“진내사격 외엔......”

작전장교가 대대장을 쳐다보며 말끝을 흐린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진내사격 이라니?

“안 돼!” 대대장은 단호하게 말하고는 상황판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요란 한 거야 잠을 못자겠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들어서던

나는 대대장과 눈이 마주치자 무안해져서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S-2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무전기에서는 계속 긴박한 상황보고가 들어오고 있었다.

“야! 어디야?” 나는 정보대원인 상황실 근무병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근무병은 메모지에 “빈손군청” 이라고 써서 보여준다.

상황을 직감한 나는 3,4일전쯤 사무실을 찾아온 서 용구 대위를 떠 올렸다.

“쿵쿵” 그런 와중에도 간헐적으로 포가 발사되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나는 이제 월남에 온지(67년10월초) 2개월 남짓한 월남초보(?) 정보선임하사관이다.

비교적 안전한 포병대대, 거기다 막강한(?) 정보이고 보면 난 참으로

운이 좋은 셈이다. 나와 관계된 모든 전우들은 안전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빈손 군청이라니, 이 이상한 전쟁을 왜? 전후방이 없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불과 며칠 전에도 나는 정보장교(이 춘섭 소령? 아니면 황모소령)와

그 빈손군청엘 간일이 있었다. 그곳엔 생포된 VC 포로수용소가 있었고,

당시 그곳에 우리 연락장교로 손 희(이)태(해간33기?) 중위가 파견되어 있었다.


그 보다 앞서 67년 8월경인가 아직 내가 파월되기 전 문제의 빈손군청이

오늘처럼 VC의 기습을 받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 때 당시월남군 현역 대위인 빈손군청의 군수란 자가 도주한 일이 있었고,

상황이 종료된 후 돌아온 군수를 우리의 손 희태 중위가 폭행한 일이 있었단다.

비록 다른 나라 군인이었지만 그것이 하극상 사건으로 확대되었다.

나와 정보장교가 빈손군청으로 손 중위를 만나러 간 것도 그 문제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그들의 대화를 귀담아 듣지 않고 가축의 우리 같은 포로들의

주거지를 보고 있었다.

정보장교와 나는 포로들이 해온 점심을 먹고 대대로 돌아 왔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때 포로가 해준 식사가 우리 입맛에

꼭 맞았다는 것이다.


빈손군청은 생포된 적 포로가 수용되어 있기 때문에 적의 기습이 잦은 곳이기도

했는데, 오늘밤 또 예외 없이 적이 기습을 감행해온 것이다.

대대장을 비롯한 참모들의 표정으로 보아 상황이 여느 때와 달리 심각한 것 같았다.

그 때 무전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대대장님! 상황이....절망적입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서 대위 대원들을 데리고 빨리 대피해 이건 명령이다.”

“안됩니다. 대대장님 CV탄을 때려주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또 다른 말은 들리지 않았다.

CV신관은 포탄이 적 상공에서 폭발함으로 그 살상 반경이 넓어서 자칫 아군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어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격을 하지 않는 포탄이다.

“.......야! 조 대위 서 용구가 제 머리위에 CV탄을 때려달란다.”

이윽고 침묵하던 대대장이 침통하게 말했다. 물끄러미 대대장을 바라보는

작전장교의 눈이 반짝 했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핀을 들은 손끝이 파르르 떨린다.


며칠 전 나는 정보 사무실에서 한 장교의 방문을 받았다.

얼룩무늬 위장복에 선명하게 서 용구라는 명찰이 달려 있고, 계급은 대위였다.

“나 서 용구 대위다. 빈손군청에 연락 장교로 나간다. 지도와 컴파스를

받으러 왔다.”

“어서 오십시요 정보에 홍 하사입니다.” 나는 이제 막 월남에 온 이 장교에게

공손하게 거수경례를 하며 말했다.

“지도와 컴파스는 여기 있습니다. 싸인을 해주십시오.”

나는 서대위의 싸인을 받고 “병기 반으로 가셔서 권총을 수령하십시오.”

“난 씩스틴(M16) 받으면 안 되나?” 서 대위는 웃으며 말했다.

“장교 휴대무기는 권총이 아닙니까?” 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야!  가서 죽으면 자네가 책임 질수 있어?”

“농담도 그런 농담 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그와의 첫 만남이었고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이야 그때 누가 알았을까?


손 희태 중위가 하극상(?)사건으로 그 보직에서 해임되고, 그 후임으로 서 대위가

부임하게 된 것이다. 후에 들은 얘기지만,

서 대위는 포항 오천 사격장 근처에서 해병대 소속 GMC의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포항이 싫어 사령부로 근무처를 옮겼으나, 마음에

안정을 찾을 수 없어 이 전장에 자원했다고 한다.

그 때가 1967년11월 말경 쯤 츄라이 2802부대로 오게 된 것이다.

2802부대의 유능한 참모들과 중대장들이 그의 동기였고, 그 들은 이 불우한

동기생을 위해 관측장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연락장교로 빈손에

파견키로 한 것이다.

운명에 만약은 없다지만 만약 손 희태 중위의 하극상 사건이 없었다면,

서 용구 대위의 운명은 또 어떻게 바꾸였을까?

비교적 월남전에 경험이 많은 손 중위가 그 자리에 계속 있었다면,

손 중위는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남았을까?

이렇게 전장에서는 순간순간 엇갈리는 운명이 늘 상존하는 곳이다.


“내 머리위에 CV 신관을 때려 달라” 고 절규하며 장열하게 산화한

고 서 영구 대위의 영웅적 희생위에 단 한사람의 생존자 주 용호 하사가 있다.

그는 강원도 삼척 출신으로 하교37기이니 나보다 선배가 된다.

그러나 상황이 끝난 후 1967년12월4일 대대장을 비롯한 참모들과 함께

우리가 빈손 군청현장에 갔을 때 확인된 것은 서 대위와 두 명의 통신병 뿐

이였고 주 용호하사(통신)는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주하사를 부르기도 하고, 생존자는 나오라고 애타게 소리 쳤으나

그는 찾을 수 없었다. 실종? 포로? 갖은 생각 속에 부대로 돌아와야 했다.


그날 저녁 무렵 2802부대는 착 가라앉아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위해 식당에 모여 있었지만 누구도 식사에 손을 대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정문 위병소에서 전갈이 왔고, 누구의 입에선지 알 수 없지만

환호가 터져 나왔다. “와! 주 용호 하사가 온다.” 이렇게 그 밤에 우리부대원 4명중에

단 한사람의 생존자만 남기고 장열하게 그 전장의 꽃이 되었다.

훗날  우리가 호이안 전선으로 이동을 했고 내가 귀국하기 한 달 전쯤에

손 희태 중위를 만날 수 있었다.

빈손군청의 비극을 말하자 그는 말했다.

“서 용구 선배에게는 할 말 없지만, 그래도 내 주먹이 백만 불짜리야” 라고 한다.

그 후 우리는 손 희태 중위의 월남군 대위폭행사건을 “백만 불짜리 주먹사건” 이라고

부르곤 하면서 비운의 서 용구 대위는 C레이숀 한 BOX도 못 먹고 전사했다며,

애석해 했다.

그런데, 당시를 기억하시는 선배들은 그 날짜를 67년 8월경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서 용구 대위를 난생처음 만난 시점이,

1967년 11월말쯤 이라는 사실인데, 만약 선배님들의 기억이 옳다면,

내가 만난 서 대위는 유령임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보훈처 기록에도 역시 서 대위의 전사 날짜가 1967년 12월 3일로 남아있다.

선배님들께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맹세코 내 기억이 사실입니다.          
------------------------------------------------------------------
답글:운영자
2009-01-20 20:28 먼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초심님의 전투수기 생생하게 잘 읽었습니다.계속 건필 해 주시기 바랍니다.  

------------------------------------------------------------------------
호이안 전선의 전운(戰雲) (1 )
2009/01/20 13:00
http://blog.naver.com/rokmc42h/50041043737

1967년도 저물어 가는 츄라이 전선에서 우리는 또 다시 낯선 호이안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츄라이 전선이 어느 정도 평정되었을 때 였기 때문에 비교적 청룡부대는 최소한의 안전이  확보되었는데, 그 결정적인 요인이 년초에 있었던 짜빈동 대첩의 결과 였던것같다.

짜빈동에서 주력을 잃은 적은 그후 크고적은 전투에서 지리멸멸 하게되고,

청룡과 전투하기를 기피하고 있었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우리 포병은 직접 적과 교전을 해야 하는 보병에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신변은 안전하다고 할 수 있으나, 적에게는 눈에 가시처럼 괴멸 시켜야 할 최대의 적이고,  그 대상이었기 때문에 늘 적의 제 일의 공격 목표여야 했다.

전장에서 보병 전우들의 표현할 수 없는 고생은 누구나 익히 알고 있을것이다.

그런 이유로 해서 우리포병은 늘 보병전우들에게 고마움과 경의를 표하곤 하는데,

보병전우들은 최악의 경우에는 믿을곳이 포병 뿐이라고 말하곤 한다.

"신뢰" 전장에서 전우들이 서로 믿는다는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또한 대한민국 해병대 포병은, 즉 해포의 정확하고 신속한 사격술은 세계 최고라는

찬사를 받고 있었고, 그 명성은 월남 전쟁에서 확인된바 있다.


호이안으로 이동하기에 앞서 우리 정보장교(황 모소령)는 미 해병으로부터 진지 인수를 위해  최 광익 병장(정보 병)을 대동하고 선발대로 호이안으로 출발했다.

황 소령은 영어가 유창한분인데, 추라이에서 귀국할 입장이었으나 진지 인수문제로 한발 앞서   호이안으로 가게 되었으므로 내심 불만이 있었을 것이다.

부대는 이동을 위하여 개인 화기를 제외한 장비를 완벽하게 포장을 하고 출발 대기상태였다.

출발을 몇일 앞둔 어느날 저녁 무렵정보장교와 수행했던 최 수병이 돌아왔는데,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등은 온통 진흙으로 갑옷을 입은것 같았고, 얼굴은 요즘말로 머드 팩을 한것같다.

놀라서 묻는 우리들에게 최 수병이 말했다.

"정보장교님이 추라이에서 귀국 해야 한다고 해서 급히 돌아왔다."는 것이다.

호이안에서 기다렸다가 본대와 합류한후 귀국해도 되었는데 전장에 단 하루도 더 있고

싶지 않다며 돌아가자고 해서 찦차로 횡단해서 돌아왔는데, 아직 적정이 파악되지 않은 곳 이므로 최고속도를 내며 달렸기 때문에 진흙이 튀어서 몰골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단 여단본부에 집결 했다가 LST에 장비를 탑제하고 이동해야 되었기 때문에,

여단으로 이동한후 몇일간의 여유가 있었다.

여단으로 이동한뒤 이, 삼일 지났을까? 하는 날 몇사람의 전우와 우리대대가 있던,

곳으로 나가보았다.

우리대대가 있던곳이 하얗게 변했다. "아니? 저게 뭐지?" 누군가 놀라서 말 했다.

우리부대가 있던 곳에 그 마을 주민들이 포탄 탄피며, 포탄상자등 우리가 버리고 떠난 것들을   뜯어가기 위해 개미떼(?)처럼 모여들은 것이다.  


LST에 장비를 탑재하고 단단히 붙들어 매었다. 포, 포차, 찦차등 중형장비들은 굵은 쇠사슬로  단단히 옥죄어 매고, 출발을 한다.

바다로 나오니 집채만한 파도들이 몰려온다. 배가 좌우로 핏칭을 하고 앞뒤로 로링을 하는데  아직 까지 그렇게 큰 파도를 본일이 없다.

갑판위에 장비들이 금방이라도 바다로 고두박칠것 같다.

이미 호이안 하늘에 전운이 감돌고 있었고, 우리들은 도착도 하기전에 자연과 전투를

시작하고 있었다.

아~ 저 호이안에선 또 얼마나 많은 인간이 죽어가야 할까?

다낭항에 입항을 하고 상륙을 한다음에야 겨우 정신을 차릴수 있었다.

그 엄청난 파도와 싸우며 우리는 드디어 다낭항에 도착 했고, 곧이어 트럭에 분승하여

호이안 진지로 이동하게 되었다.

6중대를 디엠반에 남겨두어 대대를 지원하게 했는데, 이는 추라이에서 7중대가 담당했던임무교대인 셈이다.

호이안 포병대대는 국도에서 여단 본부방향으로 조금 들어와서 우측으로 5중대가,

그리고 부대안 도로를 가운데두고, 맹호 A포대(155m/m) 그리고 다시 그 우측으로

7중대, 다시 그 우측엔 미 해병 일개포병중대(?)가 배속되어 있었고, 그 우측으로

본부중대 외곽 초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부대위치를 정하고 나서 진지를 돌아보던 나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말이 진지였지 포진지외에 병사들의 벙커가 없을 뿐 아니라, 잔류하고 있는 미 해병포대는  콘셑건물에서 생활 하고 있었다.

우리가 행정을 보아야 할 사무실은 지상에서 약 70cm 정도 띄워서 함석과 합판으로

만들어 져 있었다. 사무실이야 츄라이에서도 그랬으니 새삼스러울것도 없지만,

당장 FDC를 비롯한 병사들의 내무생활을 해야 할 벙커가 필요했다.

도대체 미 해병은 어떻게 이렇게 하고 생활을 했를까?

대답은 간단했다. 적의 기습은 물론 포(60m/m나 81m/m)공격도 받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것을 역순으로 말 한다면 미해병은 적에게 그렇게 위협이 되는 존재가 아닐수도 있다는 것이된다. 미군이 사격을 하지 않는한, 적도 공연히 미군을 건들지 않겠다는 무언의 약속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 한국 해병은 차원이 다른 부대이다.

여러번 강조한바 있지만 월남의 지형을 포 사격으로 바꿔 놓겠다는 이 갑석 대대장의

후임 김 해근 대대장 역시 월남 땅에 놀러온것이 아닌 해병인 바에야 아군지원을 위한

사격을 멈출수는 없는 일 아닌가?


우리는 다음 날부터 필요한 벙커는 물론 대대수뇌부가 근무할 FDC(작전 상황실)을

만들기 시작 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내가 아들이 근무하던 연평부대를 방문 했을때, 대원들에게 한말은

"세계에서 포 진지나, 벙커를 가장 완벽하게 만드는 부대는 대한민국 해병"이라고

했거니와  지금 여기 호이안에서 우리 청룡은 영화에서나 볼수 있는 요새를 구축하고 있었다.

모래 땅인 그곳에 1m 정도를 파낸후에 수천 수만장의 모래주머니를 만들어 쌓아올린다.

지붕은 아름드리 통나무나 다듬어진 목재로 대들보를 얹고, 그것을 중심으로 철조망 지주를 이용해 석가레를 놓는다. 그리고 수 없이 많은 샌드 백(모래주머니)을 얹어 적의 어떤 화기공격도

무력화 시킬수 있는 완벽한 요새를 구축해 갔는데, 각부서마다 자시신들의 벙커는 자신들이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런 작업은 밤 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었다.

우리 포병대대가 빠르게 진지가 완성되어야 보병지원을 할수 있다고 판단 되기 때문이다.

또 적이 곧 대대적인 공세를 준비하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오고 있기도 했으므로

진지 구축작업은 쉴틈이 없었다. 완성된 벙커의 출입구 앞에는 출입구 보다 더

높게 바리케이트를 두텁게 하라고 지시했다.

하나, 둘씩 벙커가 완성되고 있던 어느날

68년초  적의 대대적인 구정공세가 있기 전으로 기억 된다.

초저녁에 적의 81m/m 몇발이 대대진지에 날아왔다.

우리 대원들은 이상하게도 박격포 정도는 포라고 여기지 않는듯 했다.

이미 구축한 벙커위에서 " 이크 인사 벙커 옆에 한발, 야~ 주계옆에도 또 떨어 졌는데...."

하면서 세는 정도로 대담해 있었다.



그 시각 나는 PX벙커에서 도깨비 대위라고 불리는 김모 군수장교(해간24기)와 PX장인 김모중사,

그리고 방첩대에서 파견나온 임모중사와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정보선임하사관, 우리 박격포 탄착점 확인해서 낼 아침 보고할수 있게 하고, 돌아와서

마시자." 고 임 중사가 제안 하는 것이다.

"그럽시다." 대답을 하고 함께 나와서 박격포의 탄착점을 확인하는데.....

"저기 인사 사무실 옆에 한발, 어! 우리 사무실은 맞았는데," 그랬다.

우리 S-2사무실은 지붕에 한방 맞았지만 구멍이 뚫린것 외엔 피해는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밖에서 탄착점 확인을 하고 있는데,

돌연 "쓔~슈욱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로켓트다. 업드려 "나는 그렇게 소리치며,  그 자리에 업드렸다.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등뒤가 화끈했다.

"맞았구나."순간 그렇게 생각 했다. 손을 들어 등 쪽으로 돌려보니 멀쩡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 PX쪽으로 뛰면서 소리쳤다. "임 중사, 임 중사"

대답이 없었다. 내가 업드릴때 뒤에 있었는데 보이지 않는다.

또 다시 소리쳐 임 중사를 불러보았다. "응 나 여기야 여기"

그는 가장 가까운 병기반 벙커로 뛰어 들고 있었는데, 병기반 벙커는 아직 문앞에

바리켓을 만들지 못한 상태여서 포탄 BOX로 어지럽게 샇아둔 상태였다.

그는 발에걸리는 BOX를 헤치며 기어들어가고 가면서, 내게 손짓 했지만 나는

그대로 PX벙커로 뛰어들어갔다. 군수장교가 왜? 그러느냐듯 쳐다본다.

"라켓이 날아 옵니다."

"내가 무슨 죄가 많다고 요기 맞겠어" 군수장교는 태연하게 천정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후에도 라켓 포는 계속 날아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밖이 잠잠해 졌고

여기저기에서 우리 대원들의 목 소리가 들려왔다.

목이 말라 다시 맥주를 마시려고 캔을 땄는데 본부중대 선임하사관 박 주연 상사가

들어왔다. 이 분은 한국전도 경험한 노병이었는데 군수장교에게 경례를 하고는

"의무실 다죽었습니다. 빨리 헬기를 요청 하십시요." 라는 것이다.

우린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의무실 쪽으로 뛰었다.

분명히 여긴데, 의무실 벙커가 보이지 않았다. 잠시후 손에 야전삽을 들고 대원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의무실 벙커가 있었던 장소를 파들어갔다.

그때까지 의무실 벙커는 출입구를 막아줘야 할 바리켓을 설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라켓포탄이 그 출입구를 통해 벙커로 들어가서 폭발한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생사를 확인 할 수 없는 전우들을 발굴해 내었다.

군의관을 포함해모두 아홉명이었다. 후에 알려 졌지만 4명은 전사하고 5명은 전상을 입었다.

해군소속의 군의관은 철조망 지주에 눌려 다리가 절단 되었다고 했다.

대대방석엔 수십개의 벙커가 있었고, 의무실을 제외한 모든 벙커는 해병들의

벙커였던진지에, 하고 많은 진지 중에 해군 벙커로 날아들어간 라켓포

포탄에 눈이 달리지 않았는데 상대적으로 하나 뿐인 해군벙커가 날아간 이 밤의

엇 갈린 운명은 다시 한번 삶과 죽음을 생각하게 했다.



(이 내용은 지난번 김해에서 온 최해영 전우가 어떤 전우가 바로 이 현장에서

전상을 입었으나, 그 것을 확인 할 수 없어 행정심판이 불리한채 애태우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의 내 기억을 더듬어 기술한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당시의 군의관도

찾을수 있을듯 합니다.)

-----------------------------------------------------------------------

  0,호이안 전선의 전운(2)


호이안 전선의 전운

캄란 만에 최초로 상륙한 청룡은 곡창지대인 투이호아에서 적잖은 희생을 내며, 전장에 익숙해지기 시작 했다. 어느 정도 투이호아 전선이 안정을 찾아갈 무렵 청룡은 다시 중부 산악 지대인 추라이로 이동하게 된다.

여기서 청룡은 푸옥록 전투를 비롯하여 그 유명한 짜빈동 대첩을 치루면서,

신화를 남긴 해병으로서 자존심을 되찾고, 상승무적 해병임을 세계에 과시하게 된다.

추라이는 적의 위대한 민족지도자로 추앙받는 수괴 호치민의 고향이기도 해서 그토록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다했으나, 역부족임을인정한 적은 기진맥진하여,  가능하다면 청룡과의 교전을 피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야말로 청룡은 무적의 군대가 된 셈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생포된 포로들로 부터 나온 증언인데 호치민 스스로 “청룡 포병만

없으면 청룡부대를 괴멸시킬 수 있을 텐데” 라고 하소연 했다고 하니, 훗날 우리

청룡 포병은 이러한 호치민의 오매불망하던 그 염원(?) 때문에 대대적인 기습을,

받게 된다.


추라이를 평정하여 미군에게 인계하고, 다시 미지의 세계로 가야만 했다.

우리 대대 앞에서 작은 가게를 하던 "렁"이라는 17,8세 된 소녀가 있었다.

가끔 부대 밖을 나가면 "렁"네 가게 에서 간단한 음료수나, 맥주를 마실수 있었다.

때로는 야한 농담을 하기도 했는데, 그럴때면 이 소녀는 얼굴을 붉히며,

"나, 다 알아" 하고 우리 말을 해서 크게 웃곤 했는데, 그 "렁"이 우리가 이동한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울며불며 “따이한 해빙 대 가 떠나면 우리는 모두 죽는다"며

(해병대를 그렇게 발음했다.) 가지 않으면 안되느냐고 되 물어 우리의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대대 이동 준비를 마쳐 조금은 한가한 어느 날 점심식사가 끝난 오후

위병소에서 전화가 왔다.

“정보선임하사관님, 웬 월남 경찰관이 찾아왔습니다.”

“내 이름을 대고 찾는 거냐? 아니면 직책으로 찾는 거냐?” 물었더니,

둘 다라고 한다. 즉 포병대대 정보선임하사관 아무개를 찾는다는 것이다.

나는 경찰관이 찾는다는 말에 무슨 정보가 있는 가 기대하면서 탄띠에

권총만 차고 위병소로 나갔다.

내가 나가자 그는 위병소 뒤쪽으로 손짓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전 부터 안면이 있는 사람이어서 그를 따라갔더니, 작은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 아무 말도 안하고 그의 하는 꼴을 지켜보았다.

그는 보따리에서 권총 여섯 자루를 내놓았다.

그 권총을 사라는 것이다. 내가 필요 없다고 하자 그는 손짓발짓 하면서

쌀 5자루만 주면 넘겨주겠단다. 내가 나는 이런 것 필요치 않다고 했더니,

그걸 사서 전과보고를 하게 되면 너는 영웅이 되어 훈장을 받는다며

집요하게 요구 하는 것이다. 귀찮기도 하고 짜증도 나서,  권총을 뽑아들고

노리쇠를 전진후퇴 시킨 다음 소리쳤다.

“야 이 OO야! 너 같은 놈이 있기 때문에 이 전쟁이 이렇게 지지부진 한 거야”

“당장 꺼지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어.” 내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겠지만,

내가 너무 화를 내자 그는 보따리를 다시 싸서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치고 말았다.

그 전쟁은 그랬다. 도대체 어느 놈이 적이고 누가 우군인지 알지 못하는

이상한 나라의 전쟁이었고, 그 이상한 전쟁에서 죽는다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고 생각 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지킬 가치가 없는 나라였고,

적어도 도와줄 가치도 없는 그런 나라였다. (내 생각에는 그랬다.)

누구 말처럼 개인적인 용병(?)이라면, 다 때려치우고 돌아가고 싶었다.

허지만 나는 해병이고 청룡이며, 조국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지금 여기

이 전장에 서있는것이다. 그런 저런 일들을 겪으며 이동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호이안은 꽝남성의 남중국해 연안 투본강 근처의 작은 고 도시이다.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는 중계무역도시로서 번성하기도 했었던 곳으로 지금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중남부 지역의 가볼만한 곳 Best 5에 들 정도로

베트남 내에 유명한 관광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적은 추라이에서 대패하고 또 다른 고도시인 후예에 재집결 하여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고, 호이안은 그 중간집결지였다.

청룡은 이 아름다운 도시를 중심으로 이후 월남의 패망으로 완전 철수 할 때까지

이 곳 호이안에 주둔하게 된다.

끝없이 펼쳐진 비취빛 바다와, 그림같은 해안선, 이국의 낭만(?)이 향수를 자극한다.

이 평화로운 작고 아름다운 도시에 전운을 품은 검은 먹 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왜?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총 뿌리를 겨눠야 하며, 왜? 그들을

죽여야 하는지 알수없지만, 분명한 것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것,

그것이 전쟁이라는것 뿐이다.

전장의 말단 병사에게 이데오르기를 강의 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일 뿐

그것은 사치스럽고 어리석은 일이다.

그저 죽이고 죽어가는 그 전쟁에 소모품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스무살 젊은 해병들은 이제 전장의 생리를 그렇게 익혀가고 있었다.

'해병은 무적이다. 청룡에게 패배란 없다. 세게의 최강 부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 해병대다."

'우리는 귀신도 잡을 수 있다.'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고,그렇게 세뇌(?)된다.

이미 두려움 따위는 추라이 전선에 묻어버렸다. 오직 영광스런 승리만 있다 고

그렇게 믿으며 우리는 다낭항을 거쳐 호이안에 입성하게 되었다.

보무도 당당하게,


대대 주둔지를 포함한 모든 지역이 황량한 모래 땅이다.

이곳에 각 부서별로 벙커를 만들고, 상황실 (FDC)을 튼튼 하게 구축 했다.

상황실 지붕(옥상)에는 높이 20m정도 되는 관망대를 설치하고, 야간정찰도

할수 있는 적외선 망원경도 배치 했다.

외곽 경비초소는 교통호를 만들면 무너져 내려서 포탄BOX에 모래를 채워서

교통호를 만들었고, 그 교통호는 초소와 초소가 연결되도록 했으며,

대대앞 개활지에는 원형 철조망을 여덟겹으로 설치하고, 조명지뢰를 묻었다.

초소의 주력 공용화기로 캐리바 30을 배치하고 초소 정면엔 크레모아도 설치했다.

주,야간 근무는 주간엔 초소병들이 전담했고, 야간엔 초소병 1명에 행정요원 1명이

함께 근무하도록 근무조를 편성했다.

각 중대별로 1초소에서 6초소 까지 만들어 외곽 경계를 완벽하게 하도록 했으니,

본부중대 1초소 좌측엔 7중대 6초소가 있고, 우측엔 본부중대 2초소가 위치하도록

했다. 이렇게 부대가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호이안으로 이동해서는 연일 작업,작업의 연속이었지만 대대는 대체적으로 평온했다.

포병은 어디 까지나 지원부대이다. 포병의 임무는 우군보병의 희생을 최소화

하기 위한 지원이 그 목적인 것이다.

"귀관들의 정확하고 신속한 사격으로 인하여 보병전우들의 희생이 없도록 하라."는 것이

늘 강조되고 있었다.

작업이 대충 마무리 되고 몸과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대원들의 낯선 땅에 대한 긴장도

조금은 풀어져 있었고, 남국에 휘엉청 밝은 달빛아래 향수를 달래며, 고국에 그리운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하루 아침에 내 손을 거쳐 여단본부로 보내지는 편지가 무려 천여통이 넘을 때도 있었다.

전선의 병사는 모두가 시인이고, 모두가 문학청년이다. 한창 젊은 그들의 편지는 주옥같은  미사려구가 동원되었고, 어김없이 해병대 구라도 가미되고 있었다.

체신병이 여단에서 편지를 갖여오는 오후 에는 각중대 행정병이  S-2사무실에 진을치고,내가 편지를 검열하여 중대별로 나눠 주기를 기다리고 있기도 했다.

오전에 발송될 편지는 겉봉투를 붙이지 못함으로 내가 검열하고, 군사우편과 검열필 도장을  찍고 겉봉투를 풀로 붙히는 작업도 일이였다.

나의 빠른 손놀림을보고 각중대에서는 내게 우체국장이라는 애칭으로 불러 주었다.


그렇게 평온하고 한가로운 전장의 휴식은, 그러나 그것은 폭풍 전야의 고요함이였다.

죽음을 가져올 전운은 점점 검은 농도를 더해가고 있었다.

전장의 분위기가 몸에 밴 병사는 감각으로 곧 닥쳐올 죽음의 광란을 예감하고 있었다.

느슨하던 대대의 분위기가 팽팽하게 긴장감을 더해 가고 있을 때는 구정이 코 앞에

다가와 있었다.

전장에 병사에게 더 할수 없는 향수를 느끼게하는 구정, 설을 앞두고 있던 어느날,

아마 그무렵이엇을 것이다.

여단으로 부터 정보보고가 들어 왔다. 첩보는 미확인된 정보로 쉽게 말하면 소문같은것을  취합한 상태로 아직 정보로서의 가치가 취약한 것이지만, 정보는 그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가치있는 것이다.

우리가 접수한 믿을 만한 정보는 북한의 군사고문단이 참전 했다는 것이었다.

아~아 이젠 이역 만리 타국에서,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피를 뿌리는 전장에서

직, 간접적으로 맡붙어야 하는가? 아~아 우리는 전생의 무슨 업보가 그리 많아서,

이렇게 까지,  남의나라 전쟁에서 까지, 서로 죽이지 못해 이를 갈아야 하는가?

이 정보를 뒷받침하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
 
이름아이콘 신포청천
2009-01-20 20:36
초심 해병 전우님의 참전수기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계속해서 연재 해 주시기 바랍니다.
   
 
    N     분류     제목 추천    글쓴이 작성일 조회
117 의견 곽해병 베트남 첫 전투 일기 2 0 곽해병 2011-03-14 2848
116 특별 안캐패스 전투참전기 입니다. 2 0 운영자 2009-11-09 2047
115 특별 한국군 맹호,백마부대가 담당하던 월남의 1번도로 2 0 박치국 2009-06-25 1695
114 추라이 전선의 포성 (내 머리위에 CV신관을 때려다오).. 2 0 初心(홍윤기) 2009-01-20 1261
113 일반 우리 大韓民國의 將來를 짊어질 改革과 新進의 主體ㆍ.. 1 0 운영자 2016-07-27 312
112 특별 치열했던 '72 안케전투 - 맹호기갑 전우들 3 0 황진순 2011-04-05 3133
111 특별 참전수기 - 그때 그녀는 .... 1 0 정봉 2011-03-08 2473
110 특별 안케전투.1개 대대가 전멸..보충병으로 뽑혔는데(638고.. 1 0 참전용사 2010-09-30 2634
109 오줌을 받아 마시다 2 0 안케 2010-09-29 2327
108 도대체 무슨죄를 지었기에 1 0 안케 2010-09-07 2439
107 드디어 무명고지를 탈환하다 2 0 안케 2010-07-01 2371
106 특별 (동영상:삭제):대신= 일구회 안케패스 638고지 탐방 추.. 1 0 안케 2010-01-28 2212
105 반갑습니다 1 0 박치국 2009-07-02 1904
104 특별 호이안 전선의 戰雲(0)-(1)-(2) 1 0 初心 2009-01-20 1618
103 연대작전을 취소하고 철수하다. 1 0 안케의눈물, 저 2008-11-24 1232
123456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