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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참전기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009-04-21 (화) 03:27
분 류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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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가 남긴 그 한마디....생사를 같이했던 전우야....
월남전 회고

지금으로부터 약 25여 년 전 즈음의 일이다. 월남전 후에 각각 다른 분야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매진하고 있던 몇몇 전우들과 연락이 닿았다. 당시의 포탄 소리와 함께 나의 기억 속에 선명히 각인되어 있던 6-7명의 전우를 시내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우리는 서로 모습을 통해 월남전 당시의 치열했던 삶과 죽음의 현장을 재현해 냈다.

물속에서 목욕하다 말고 느닷없는 베트콩의 기습 사격에 벌거벗은 몸 그대로 줄행랑을 쳤던 것을 회상할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담담히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적의 은거지를 향해 탐색 작전을 하던 중 독을 발라놓은 죽창을 잘못 밟아 한쪽 다리를 온통 썩혀버릴 뻔했던 '장 중위 사건'에 이야기가 옮겨가자 우리는 다시금 그때의 아찔한 긴장감으로 빠져들었다.

또한, 우리의 기습 공격 중 수류탄 파편에 맞아 복부를 심하게 다친 적군 병사가 밖으로 툭 튕겨 나와 있는 자신의 창자에 손가락질을 해대며 제발 좀 구해 달라고 애원을 하던 장면에 이야기가 이르렀을 땐, 우리는 얼굴을 찡그린 채 소주 몇 잔을 연거푸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적군의 생사를 확인하려고 대검으로 시체를 쿡쿡 찔러볼 때 느꼈던 그 물컹물컹한 느낌, 전투식량이 떨어져 여러 끼니를 거른 채 험난한 정글 속을 탐색하던 중 오래간만에 구세주처럼 나타난 재보급용 헬리콥터가 적들의 기습 사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저-쪽 산 넘어 계곡에 보급품을 풍덩 떨어뜨려 놓았을 때의 안타까움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생사의 고비를 넘어서 살아난 자들만이 뱉어 낼 수 있는 깊은 인생의 한숨을 공유했다.

우리의 찡그러진 얼굴은, 위협적인 기습 공격으로 수적으로 월등히 우세한 적군들이 오합지졸이 되어 도망치기에 급급했던 동보작전의 통쾌한 전승담을 이야기하면서 어느새 환하게 변하였다.

술잔은 계속 돌았고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른 박 상사는 일주일 분의 야전 식량과 침구, 야전삽 등을 모조리 주워 담은 18킬로그램 이상이나 되는 묵직한 배낭을 등에 업고도, 소총, 수류탄, 탄약, 야간 조명기, 쌍안경, 지도, 나침반 등 수많은 장비를 온몸에 주렁주렁 매어 달고 험난한 산악 지대에서 정글을 누비며 온 종일 말없이 걸어야 했던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술 취하면 같은 말 되풀이 하는 박 상사의 버릇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었다.

당시 중대장이었던 나는 열대 지방의 불청객인 지긋지긋한 말라리아 병에 걸려 여러 날 동안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설사를 해대느라 지휘관으로서의 체모가 말이 아니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선임 부사관으로 부대원 모르게 나를 간호했던 사람이 바로 이 박 상사였었다. 술에 많이 취해 횡설수설하는 박 상사의 모습에서 가까운 동네 형 같은 정취가 느껴졌다. 우리는 식당에서의 일차를 끝내고 가까운 주점으로 자리를 옮기느라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달 없는 깜깜한 서울의 밤길을 걸으며 우리는 1969년 베트남전 당시 칠흑같이 캄캄한 음력 그믐날만 되면,구정공세인, 베트콩들은 어김없이 우리의 진지 근처로 침투해 왔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들은 온몸에 미끈미끈한 참기름을 바른 다음 그 위에 시커먼 숯검정을 칠한 채 신발도 신지 않고 벌거벗은 몸으로 우리의 경계초소 50-60미터 앞까지 살금살금 침투하여 가시덤불 속에 몸을 숨긴 채로 수십 발의 박격포탄을 공중에 띄워 놓고는 순식간에 줄행랑을 쳤다.

곧이어 미군 제2항공대대의 기지에서는 찌르륵- 쾅 찌르륵- 쾅하는 굉음과 함께 헬리콥터 부서지는 소리가 귀가 찢어질 듯이 들려왔고, 그때마다 우리는 아군과 미군의 지원포병이 쏘아대는 조명탄의 불빛을 받으며 밤새껏 그 베트콩 들을 찾아다녔었다.

옮겨간 주점에서 우리는 이런저런 전장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술잔을 돌리는 속도가 점차 빨라지면서 우리는 많이 취했다. 젓가락으로 술상을 두들겨 댔고, 각자 나름의 애청곡을 불러 댔다. 나는 목청을 높여 허성희 씨가 히트시킨 유행가 "전우가 남긴 그 한마디"를 불렀다. 그런데 어느새 모두가 함께 따라 부르고 있었다.

생사를 같이했던 전우야 정말 그립구나 그리워
총알이 빗발치던 전쟁터 정말 용감했던 전우야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정의의 사나이가
마지막 남긴 그 한 마디가 가슴을 찌릅니다
이 몸은 죽어서도 조국을 정 마~알 흑~흑 , 앙~앙,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북받쳐 오르는 묘한 감정에 울음을 터뜨렸다. 이울음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험난하고 위험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일까? 아니면 살아남은 자로서 그때 죽어간 동료에게 갖는 미안함일까? 어쩌면 참혹했던 장면을 가슴속에서 지워내고 싶은 처절한 몸부림이었으리라, 25여 년 전의 우리들의 첫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 이후에도 우리는 가끔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곤 한다.

월남전에서 함께 싸우다 고귀한 생명을 바친 전우들의 명복을 빈다. 또한, 당시 전쟁터에서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었던 모든 전우들의 앞날에 무궁한 행운이 깃들기를 빌어 마지않는다.작가: (박 봉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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