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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참전기
작성자 初心
작성일 2009-01-31 (토)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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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 전선의 전운(9)-(10)-(11)
1968년에는 국내에서도 심상치 않은 사건이 발생한 해이기도 했다.
연초 1월21일 김 신조 사건으로 알려진 북괴군 특수부대가 청와대
뒷산에까지 침투했다는 소식이 전장에서 생사의 전투를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알려졌다.
구정대공세로 지칠 대로 지친 대원들은 “귀국하자” 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본국의 우리군은 무엇을 하고 있기에 놈들이 청와대 근처까지 왔느냐?” 고
흥분하고 있었다.
“남의나라 전쟁에서 우리가 죽어가고 있는 동안 내 부모 내 형제가 있는
우리나라는 북한의 침략으로 또 그 전쟁을 해야 하느냐?” 이것이 귀국해야 한다는
명분이기도 했다. 1953년에 한국전쟁이 휴전이 되었으니 불과 15년이 지났을 뿐인데
실전경험을 가진 우리들이 돌아가서 “응징하자” 는 애국충정이 하마터면
사상초유의 집단 항명사건으로 확대될 뻔 했다.
귀국하면 곧 제대한다며 들뜬 기분으로 귀국한 소위 귀국 장병들은 김 신조 사건으로
제대가 무기한 연장되었고, 보직 없이 부대에서 빈등(?)거리는 軍 백수가 된 셈이다.

“일이일 사태 무장공비, 공비가 웬 말이냐?
67년도 제대할 몸 68년이 웬 말이냐?
신조 때문에 신조 때문에 잊지 못할 김 신조
신조 때문에 신조 때문에 이 밤도 한잔 또 했다.”

당시 유명한 가수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 이라는 대중가요에 가사를
바꿔 부르며 윗사람들의 눈을 피해 술을 마시며 연장된 제대에 대한 불만을
해소시키고 있었다.

좀 이른 시간이지만 석식을 일찍 한 것은 저녁에 유일한 즐거움인 영화 Com bat을
보기위해서다.
석식을 마치고 주계에서 연병장을 가로질러 사무실 쪽으로 오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굉음이 들린다.
깜짝 놀라 순간적으로 엄폐할곳을 찾아 뛰면서 하늘을 보니, 팬텀기가 꼬리에
불꽃을 매단 채 곤두박질하면서 날아오고 있었다.
바로 우리부대 복판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그러나 팬텀기는 부대에서 멀찍이 떨어진 어느 정글에 떨어지기 직전에 두개의
물체가 튀어나오더니 곧 큰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그러자 즉시 미군의
건 쉽(무장헬기)이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후에 들은 얘기로는 이 최첨단 전투기가 적 소총에 맞고 추락했다고 한다.
분리되어 튀어나온 것은 조종사와 조종사가 앉았던 의자였고 조종사는 그렇게
탈출에 성공했다.
여담이지만 부자나라인 미국은 그런 위기 상황에 비행기를 버리고 “탈출하라”고
해서 조종사의 안전을 우선 고려 하지만,
우리는 그 경우 어떻게 하든지 막말로 조종사가 죽는 한이 있어도 비행기를
살려야 한다고 들었다. 이것이 가난한 나라의 군인과 부자나라의 군인의
다른 점인 것이다.

우리부대 7중대 우측에 미 포병 중대가 배속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기술 했거니와
내 동기생들이 7중대에 있어서 자주 7중대에 갔었는데 그때마다 미군들과
어울려 맥주를 마실 일이 많았다.
이 미국친구들 언제나 저희들이 “일등국민”임을 강조하고 우리들 앞에서 우쭐댄다.
우리가 누군가? 열 받으면 앞뒤고려하지 않고, 일을 저지르는 해병이고,
그 해병 중에 선택받은 청룡이 아니던가? “야! 양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야! 이 ㅆㅅ야! 네놈들이 일등국민이면,
우리 코리언은 특등국민이다. 너 알아? 인마 특등이 뭔지?”
우리가  새카맣게 탄 얼굴에 눈을 반짝이며 한손을 높이 쳐들면서,
되지도 않는 영어와 손짓발짓을 해가며 눈을 부라린다.
“오! 노 아메리칸 일등국민, 코리안 일등국민 우리 모두 일등국민”
이라며 엄살을 부린다. 그들은 우리대원 모두가 태권도를 한다고 믿고 있었다.
“일등국민” 그랬다. 일등국민이 되고 싶었다. 아니 일등국민은 아니더라도,
부자나라가 될 수 있다면, 이 젊은 목숨 이 땅에 버린다 한들 아쉬울 게 없을 것
같았다. 미군들은 그 전장에서도 일등국민으로서의 여유로움이 있었다.
가끔 그들은 카메라 등 귀중품을 가지고 와서 우리 대원들의 청룡배지와
1:1교환을 간청해서 우리대원들이 횡재(?) 하기도 했다.

그 무렵의 어느 날 사무실에서
나는 우리대대에 배속된 월남군 중사가 부대에 있었던 날과 외박한 날짜를
점검하고 있었는데,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가 부대에 있던 날에는 적의 라켓포가 날아오지 않았고, 그가 외박한 날에는
어김없이 그 라켓포가 날아왔던 것이다.
“이거 좀 이상한데, 대대장에게 보고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다.
이 날은 마침 Com bat상영이 있는 날이었다. 영화를 볼 때는 연병장에 근무자를
제외한 대원들이 모여 앉는다.
그런데, 이 월남군 중사가 내게 외박하겠다고 보고를 해 왔다.
내 생각이 맞는다면 오늘밤에 라켓이 날아올 것이다.
대원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라켓공격을 받는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결과가
올 것이다. 막아야 했다. 아무리 전장의 유일한 낙이라 해도 상영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 나는 대대장 에게 영화 상영을 중단해줄 것을 건의했다.
“왜? 그래? 대원들이 좋아하지 않나?”
“다음엔 모르겠습니다. 허지만 오늘은 중단해 주십시오.”
“그래 알겠는데 이유가 뭔가?”
“저 그 친구 월남인중사가 밖에 나갔습니다.”
“그것과 연관이 있나?” “확실하게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허지만 지난 몇 주째
그가 밖에 나간 날은 어김없이 라켓포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뭐? 그걸 왜? 인제 보고하나?”
“저도 오늘 그것을 발견 했습니다.” “놈이 첩자인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허니....” “알았다 영화 상영은 중단한다.”
대대장은 내 건의를 수락하고,나에게 그의 동태를 계속주시하라고 지시한후
본부중대장을 비롯한 참모들을 소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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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 전선의 드리운 전운(10)
미국영화 Com bat(전투)은 주인공 앤더슨 중사가 이끄는 미 해병분대가
치열한 전투를 치루면서 겪는 일상들을 그린 영화로, 마치 이 전쟁에서
말없이 사라져가는 우리 보병전우들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고,
또 포병이라는 병과덕분에 그 보병들을 지원하는 젊은 해병들의 전투의욕을
부추기며, 대리만족을 하게하는 어떤 면에서는 군 홍보영화 같은 것이기도 해서,
인기가 있었다.
영화 상영시간이 되기도 전에 여기저기에서 삼삼오오 모여든 청룡들은 영화상영이
취소되었다고 하자 모두 실망을 안고 돌아갔다.
각 중대는 초소근무자를 제외하고 전원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명령이 하달
되었다. 초소에 순찰을 돌아야 하는 하사관들도 이날 밤은 순찰을 돌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대원들은 여기저기서 수군대고 있었다.
무엇인가 대대에 변고가 있는것이라고 불안 해 하는 어린 병사들도 있었다.
그러나 제일 불안한 사람은 나일 수밖에 없었다.
공연히 죄 없는 사람을 의심하는 것은 아닌지, 외박하겠노라고 찾아왔던 그의
선하게 보이는 얼굴이 떠올라 도리질을 하며 떨쳐내야만 했던 그 밤,
영화 상영이 예고되었던 그 시간에 아니기를 바랐던, 내 생각이 틀리기를
그렇게 빌었는데 문제의 122mm라켓포가 그 특유의 소리를 내며 날아오기
시작 했다. 조선시대 우리의 신형무기인 “신기전” 처럼 괴음을 내며 날아오는
라켓포, 아무리 그 발사장소를 찾으려 해도 신출괴몰하여 찾지 못하여,
청룡포병의 자존심을 구기게 한 그 라켓포의 공격이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이젠 의심의여지가 없었다. 우연의 일치로 보기엔 그 월남군 중사의 미심쩍은
행동이 들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언젠가는 함께 부대 밖을 나갔는데, 이 친구가 감쪽같이
사라졌다가 30분이나 지나서 나타났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앨빈이 작전나간다고 했는데 우리 관측반에서 사격요청이
왔지만 사격을 못한 것도 이자의 짓인 것 같다.” 고 작전장교가 말했다.
그 외에도 그동안 그의 석연치 않은, 이해할 수 없는 행위들이 들어났다.

“이 자를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겠는가?” 이제는 이것이 문제였다.
잡아다 고문이라도 해서 자백을 받았으면 좋으련만 그럴 수 도 없는 처지다.
공식적으로 그는 월남군에서 우리대대에 연락관으로 파견 나온 우방의 현역
중사였던 것이다.
“이 일은 일단 대원들에게 비밀로 한다. 대원들의 사기문제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여단에 보고하고, 월남군 사령부에 통보하여 소환하도록 조치하겠다.
그 후에 월남군이 군법에 회부하던지 여부는 그들의 권한이 되겠지.”
대대장은 그렇게 말하고 곤혹스런 표정으로 “허 참 기가 막히는군. 무슨 놈의 전쟁이
이 모양이야” 라고 말하며 누구에게 라고 할 것 없이 신경질을 부린다.
“대대장님 전시인데 우리가 즉결처분을 하면 안 됩니까?” 하고 내가 철없이
말했다.
“뚜렷한 물증이 있는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자칫하면 월남군과 마찰이
생길수도 있어, 일 크게 만들지 말고 내말대로 하도록 해”
이렇게 결론 지워지고 말았지만, 나로선 아쉬운 결과이기도 했다.
다음 날로 놈은 월남 정부군에 의해 조용히 소환되었고 후임자를 보내겠다고
통보해 왔는데 우리대대장이 “당신네 연락관 필요 없어 필요하면 우리가
다시 요청 할 테니 그리 알라” 고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 전쟁을 나는 이상한 전쟁이라고 표현 하거니와 당시의 월남이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부패했을 뿐 아니라 군 내부에서도 사회주의와 민주주의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 이였던 것 같다.
마치 광복 후 우리나라의 제주사건이나, 거창 사건들 처럼 월남은 혼돈을
자초하면서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었다.
전쟁 중에 학생들이, 불교지도자들이, 반정부 데모를 하며 거리를 누비고 있었고,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층 인사들은 금괴를 만들어 해외도피를 구상하고 있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이울리나?”라는 불후의 명작이 있지만, 이 전쟁에서
우리는 누구를 위해 싸워야 하는지 강한 의구심을 떨칠 수 없는 작은(?)예가
아닐까 싶다.

전장에서 전투에 지친 병사들의 사기를 올려주기 위한 위문공연단이 심심찮게
고국에서 찾아와 주었다.
문주란이라는 소녀 가수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전장의 병사들의 향수를 자극했고,
카니. 홍이라고 불리는 여 가수의 섹시하고 현란한 몸동작은 젊은 청룡들을
환호하게 했다.
위문공연이 있는 날이면 병사들은 전투복을 말끔히 세탁하고, 주름도 잡고
한껏 멋을 부린 모습으로 마음 설레며 작전이 없는 인근 부대원들이 차량으로 모여
들었다. 연병장에 임시로 마련한 무대에서는 이곳이 전장이라는 것을 잊을 정도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그 날은 아침부터 하늘이 회색빛으로 물들어 혹 공연 중에 비가내리면 어쩌나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여단 본부로부터 공연단을 안내하여 가라는 지시를 받고 트럭 두 대에 호로를 씌우고
여단본부로 가서 공연단을 인수해 오게 되었다.
무용수들의 대화 한 토막 “야 나 어떻게 해?” “왜?” 다른 무용수가 반문한다.
“어제 밤 무용복 팬티가 없어 졌어, 어떻게 춤추지?” “어머 너도 그랬어? 나돈데”
“할 수 없지 뭐, 나체로 춤 출수는 없잖아, 바지 입고 춰야지”
그랬다. 여자의 속옷을 가지고 있으면 총알이 피해간다나 뭐? 어쩐다나! 해서
위문공연단의 여자출연자들의 속옷이 몽땅 없어지곤 했던 것이다.
공연이 시작 되었다.
요즘은 MC라고 불리는 당시에 사회자는 위키 리라고 불리는 가수 출신이었는데,
공연이 시작되고 얼마 안 되었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 했다.
질서정연하게 앉아서 공연을 관람하던 좌중이 쑬 렁이기 시작 했다.
다른 부대에서 대원들을 인솔하고 오신 소령 한분이 앞으로 나섰다.
“청룡!” “악” “청룡!” “악”
“빗물이 뼈다귀 속으로 들어가나?” “아닙니다.”
“그렇다면 청룡답게 그대로 동작 그만 자리를 이탈하지 않는다.”
“악”하고 우렁찬 박수가 터져 나왔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회자 위키 리 는
끝내 눈물을 흘리면서 진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청룡 장병 여러분! 제가 수없이 많은 공연을 다녔지만 오늘 처럼 감동적인 관객은
처음입니다. 여러분 모두 한사람도 빠짐없이 귀국해서 고국에서 만나기를 하느님께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그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삼켜야 했다.
청룡에 얼굴에도 빗물에 감춰진 눈물이 흘러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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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 전선의 전운(戰雲)(11)
미리 밝혀 오해 없기를 바라며,
이 글을 전장일기처럼 기록하여 남기려 함은, 필자 자신이 보병전우들 처럼
치열한 전투 현장에 있지 않았고, 포병이면서 포 분대장을 하지 못했다.
병과와는 상관없이 전쟁의 최고급 비밀은 아니라 해도 비밀문건에
근접했던 필자로서 보고 느낀 것을 가능한 한 흥미 있고 지루하지 않도록
담담하게 쓰고 있다.
정보라는 특수한 위치에서 당시의 상황을 일기나 메모 등 어떤 형식으로도
기록의 잔해를 남기는 것이 군 보안상 있을 수 없어 아무것도 그때의 상황을
정확하게 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다만 필자의 기억에 의존하여 쓰고 있음으로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상이할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해 주기를 바라며,
본문 호이안 전선의 전운을 담담하게 쓰고 있음을 밝힌다.

미국이 그 전쟁에 천문학적인 전비(월20억$)를 쏟아 붓고 이 아름다운 나라를 초토화
시키는데 동원된 장비는 어마어마했다.
이름도 생소한 각종폭탄들이 항공기에 의하여 무차별 투하되었고,(매달 10만t이상)
지상에서는 거대한 8인치 포를 비롯한 155mm, 105mm. 4.2인치중포 등
나열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량의 중화기 포탄들을 그 땅에 쏟아 부었다.
자유와 정의를 수호한다는 대 명제아래 우리 한국군이 그 전장에 파병되었지만,
막상 현지에 와서 전투를 치루며 병사개개인이 느끼는 것은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평화인지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오기도 했다.

소설가 황석영 씨는 한겨레21 273호 특집 베트남 종단 특별르포 한국군 양민학살
현장을 보고 쓴 글에서, 미군 사령관 웨스트 모얼 랜드가 기존의 작전이었던,
적을 색출하여 섬멸한다는 것을 전환하여 자연 취락지역을 분쇄한다는 작전으로
전략 촌을 정해놓고, 그 외의 지역을 자유살상지역으로 만들면서,
“밀라이학살, 쾅트리 사건 등이 발생했다고 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좀 다르다. 전략 촌이란 개념의 차이가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군은 작전개시 전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양민을 소개시키고, 작전을 감행했으며,
소개하지 않은 자들을  게릴라로 판단하였고 이를 섬멸했던 것이다.
또 북한군 군사고문단이 한국군으로 위장하고 자신들에게 비협조적이며, 한국군에게
협조적인 자연부락을 무차별 공격한 후 한국군의 만행이라고 주장했을 개연성이
충분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당시 그런 첩보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여하튼 그 전쟁에서 천문학적인 막대한 량의 포탄이 소요 되었던 것은 사실이었고
그로 인한 양민의 희생은 불가피 했을 것이다.

이제 다시 우리 청룡포병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내가 근무하는 동안 우리포병이 파병 후 40만 발 째를 당시 여단장 김 연상 장군이
호이안포병대대 진지에서 직접 방아 끈을 당겨 사격을 했다.
그렇게 청룡은 상상할 수도 없는 량의 사격으로 105mm 포를 혹사(?)시키고 있었다.
그것이 한 사람의 보병전우라도 더 살려야 한다는 포병들의 피눈물 나는 전우애였을
것이다. 하루 밤에 2,000발을 사격한 날도 있었으니, 대포인들 남아날 수가 있었을까?
결국 5중대에서 사고가 나고 말았다. 105mm포의 몸통이 파열된 것이다.
그 사고로 귀국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사수가 전사하고 말았다. (사진보관)
2,000발의 포탄이면 대한민국 해병대가 국내에서 2년간 훈련으로 소비하는 포탄의 숫자와 같은 량이다.
급기야 미군은 우리에게 내 주는 포탄을 제한하겠다고 통보해 왔다.
나는 우리 군수장교와 함께 미 군수지원단(?)을 찾아갔다.
“아니, 포탄을 줘야 지원 사격을 할 것이 아닌가?” 군수장교가 항의 했다.
“물론 그렇소! 허지만 당신들은 포탄을 너무 많이 사용한단 말이요”
“뭐? 아니 그럼 지원 요청 들어오는데 포탄이 없어 지원할 수 없다고 하란 말이야!”
언성이 높아졌다.
“상부의 지시입니다.” “빌어먹을 상부는 무슨?”
“그럼 도대체 얼마나 주겠다는 거야?”  “현재의 반 정도 줄 수 있습니다.”
“이런! 내가 지금 구걸하러 왔는지 알아?”
“더 이상은 어쩔 수 없습니다.” 미군 담당관은 완강하게 거부했다.
군수장교는 오른 손으로 허리에 차고 있는 권총 을 툭툭 치고 있었다.
나는 일촉즉발에 위기라고 생각 했다. 이 군수장교는 별명이 도깨비 대위다.
고참대위로서 동기들은 모두 진급되었으나 아직 진급을 못한, 그래서
도깨비가 되었단다. 무슨 짓을 할지 조마조마 했다.
“군수장교님! 그럼 우리지역에만 지원하겠다고 하십시오.” 라고 내가 말했다.
“좋소, 당신들이 포탄을 줄 수 없다면, 할 수 없지 그 대신 앞으로 우리는
우리 한국해병대 책임지역에만 지원을 할 수 밖에 없소. 당신들 미군 지역에는
우리가 지원할 수 없다는 것을 당신 상부에 보고하시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미군에게서 필요한 량의 포탄을 받을 수 있었다.
참으로 이상하고 별난 전쟁이 아닐 수 없다.

그 무렵 대대장  김 해근 중령이 귀국하고, 이 형직 중령이 부임했다.
이 형직 중령은 동기생들이 거의모두 대령이라 대령 급 중령이라고 했다.
전임 대대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엄격 했고 무게(?)가 있었다.
일선 지휘관 을 하지 않아 진급이 늦어진 케이스이다.
대대장이 바뀌고, 본부 중대장도 바뀌었다.
정보장교는 수도 없이 바뀌어서 내가 다른 중대장들의 이름은 기억하고 있는데,
오히려 내 직속상관인 정보장교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다.

건기가 지나고 우기가 왔다.
우리가 주둔하고 있던 지역은 모래땅임에도 불구하고 물이 땅으로 스며들지 않고
그대로 고이는 것이다. 비가조금 내렸을 때 모래를 발로 슬쩍 차올리면 마른 모래가
나온다. 무슨 원리인지 무슨 모래인지 과학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우기 철이 돌아와 비가 내리니 부대는 물에 잠길 듯 물이 고였다.
각 벙커마다 문 앞에 모래부대를 쌓아올려 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했다.
외곽 초소는 교통호에 물이 고여서 행동에 많은 지장을 주었고, 어떤 날에는
주계에 식사를 하러 갈 때 에어 매트에 식기를 얹어놓고 밀고 물속을
걸어가기도 했다. 외곽 초소 근무자들은 무섭게 파고드는 졸음으로 몸이 반쯤
물에 담겨 있는 상태에서도 잠을 자고 있었다. 참으로 인간의 적응력은
어디까지 일까? 그 놀라운 적응력이 인류가 멸종되지 않은 이유인지도 모른다.
어느 날 비가 잠시 멈춘 틈을 타서 외곽초소의 교통호를 뜯어내고 진지내의
물을 빼 냈는데, 대대 앞마을에 촌장을 비롯한 주민들이 몰려와 항의를 하는
것이었다.
항의의 내용인즉 우리 부대에서 나가는 물 때문에 가옥 한 채가 수몰(?) 되었으니
변상하라는 것이었다.
민사장교와 함께 나가보니 문제의 가옥 옆으로 물줄기가 형성되어 흐르면서
지반이 침수되어 집이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집이라야 우리나라의 원두막처럼 만들어진 가옥인데, 지금 내 기억으로 쌀30포를
주었던 것 같다.
이렇게 이국에서의 생활도 막바지로 가고 있었다.
귀국을 하게 되면 나는 무엇으로 귀국박스를 채워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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