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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참전기
작성자 初心(홍윤기)
작성일 2009-01-20 (화)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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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121.xxx.52
추라이 전선의 포성 (내 머리위에 CV신관을 때려다오)
전선의 울리는 포성





 



1967년 12월 츄라이 전선 청룡 제2802부대 상황실(FDC)

거기 있는 모든 무전기는 오픈되어 있었다.

대대장 김 해근 중령은 사색이 되어 작전장교 조 설현 대위를 다그친다.

“빨리 쏴, 서 용구 죽는다고, 뭘 해? 왜? 쏘지 못 하는 거야?”

진땀을 흘리며, 상황판을 노려보고 있는 작전장교는 핀을 손에 든 채

옆에 측지장교인 동기생 최 경환대위를 흘깃 바라본다.

“핀을 꼽을 때가 없습니다.” 측지장교가 대답했다.

“뭐야? 왜?”

“진내사격 외엔......”

작전장교가 대대장을 쳐다보며 말끝을 흐린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진내사격 이라니?

“안 돼!” 대대장은 단호하게 말하고는 상황판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요란 한 거야 잠을 못자겠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들어서던

나는 대대장과 눈이 마주치자 무안해져서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S-2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무전기에서는 계속 긴박한 상황보고가 들어오고 있었다.

“야! 어디야?” 나는 정보대원인 상황실 근무병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근무병은 메모지에 “빈손군청” 이라고 써서 보여준다.

상황을 직감한 나는 3,4일전쯤 사무실을 찾아온 서 용구 대위를 떠 올렸다.

“쿵쿵” 그런 와중에도 간헐적으로 포가 발사되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나는 이제 월남에 온지(67년10월초) 2개월 남짓한 월남초보(?) 정보선임하사관이다.

비교적 안전한 포병대대, 거기다 막강한(?) 정보이고 보면 난 참으로

운이 좋은 셈이다. 나와 관계된 모든 전우들은 안전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빈손 군청이라니, 이 이상한 전쟁을 왜? 전후방이 없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불과 며칠 전에도 나는 정보장교(이 춘섭 소령? 아니면 황모소령)와

그 빈손군청엘 간일이 있었다. 그곳엔 생포된 VC 포로수용소가 있었고,

당시 그곳에 우리 연락장교로 손 희(이)태(해간33기?) 중위가 파견되어 있었다.




그 보다 앞서 67년 8월경인가 아직 내가 파월되기 전 문제의 빈손군청이

오늘처럼 VC의 기습을 받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 때 당시월남군 현역 대위인 빈손군청의 군수란 자가 도주한 일이 있었고,

상황이 종료된 후 돌아온 군수를 우리의 손 희태 중위가 폭행한 일이 있었단다.

비록 다른 나라 군인이었지만 그것이 하극상 사건으로 확대되었다.

나와 정보장교가 빈손군청으로 손 중위를 만나러 간 것도 그 문제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그들의 대화를 귀담아 듣지 않고 가축의 우리 같은 포로들의

주거지를 보고 있었다.

정보장교와 나는 포로들이 해온 점심을 먹고 대대로 돌아 왔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때 포로가 해준 식사가 우리 입맛에

꼭 맞았다는 것이다.




빈손군청은 생포된 적 포로가 수용되어 있기 때문에 적의 기습이 잦은 곳이기도

했는데, 오늘밤 또 예외 없이 적이 기습을 감행해온 것이다.

대대장을 비롯한 참모들의 표정으로 보아 상황이 여느 때와 달리 심각한 것 같았다.

그 때 무전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대대장님! 상황이....절망적입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서 대위 대원들을 데리고 빨리 대피해 이건 명령이다.”

“안됩니다. 대대장님 CV탄을 때려주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또 다른 말은 들리지 않았다.

CV신관은 포탄이 적 상공에서 폭발함으로 그 살상 반경이 넓어서 자칫 아군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어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격을 하지 않는 포탄이다.

“.......야! 조 대위 서 용구가 제 머리위에 CV탄을 때려달란다.”

이윽고 침묵하던 대대장이 침통하게 말했다. 물끄러미 대대장을 바라보는

작전장교의 눈이 반짝 했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핀을 들은 손끝이 파르르 떨린다.




며칠 전 나는 정보 사무실에서 한 장교의 방문을 받았다.

얼룩무늬 위장복에 선명하게 서 용구라는 명찰이 달려 있고, 계급은 대위였다.

“나 서 용구 대위다. 빈손군청에 연락 장교로 나간다. 지도와 컴파스를

받으러 왔다.”

“어서 오십시요 정보에 홍 하사입니다.” 나는 이제 막 월남에 온 이 장교에게

공손하게 거수경례를 하며 말했다.

“지도와 컴파스는 여기 있습니다. 싸인을 해주십시오.”

나는 서대위의 싸인을 받고 “병기 반으로 가셔서 권총을 수령하십시오.”

“난 씩스틴(M16) 받으면 안 되나?” 서 대위는 웃으며 말했다.

“장교 휴대무기는 권총이 아닙니까?” 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야!  가서 죽으면 자네가 책임 질수 있어?”

“농담도 그런 농담 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그와의 첫 만남이었고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이야 그때 누가 알았을까?




손 희태 중위가 하극상(?)사건으로 그 보직에서 해임되고, 그 후임으로 서 대위가

부임하게 된 것이다. 후에 들은 얘기지만,

서 대위는 포항 오천 사격장 근처에서 해병대 소속 GMC의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포항이 싫어 사령부로 근무처를 옮겼으나, 마음에

안정을 찾을 수 없어 이 전장에 자원했다고 한다.

그 때가 1967년11월 말경 쯤 츄라이 2802부대로 오게 된 것이다.

2802부대의 유능한 참모들과 중대장들이 그의 동기였고, 그 들은 이 불우한

동기생을 위해 관측장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연락장교로 빈손에

파견키로 한 것이다.

운명에 만약은 없다지만 만약 손 희태 중위의 하극상 사건이 없었다면,

서 용구 대위의 운명은 또 어떻게 바꾸였을까?

비교적 월남전에 경험이 많은 손 중위가 그 자리에 계속 있었다면,

손 중위는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남았을까?

이렇게 전장에서는 순간순간 엇갈리는 운명이 늘 상존하는 곳이다.




“내 머리위에 CV 신관을 때려 달라” 고 절규하며 장열하게 산화한

고 서 영구 대위의 영웅적 희생위에 단 한사람의 생존자 주 용호 하사가 있다.

그는 강원도 삼척 출신으로 하교37기이니 나보다 선배가 된다.

그러나 상황이 끝난 후 1967년12월4일 대대장을 비롯한 참모들과 함께

우리가 빈손 군청현장에 갔을 때 확인된 것은 서 대위와 두 명의 통신병 뿐

이였고 주 용호하사(통신)는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주하사를 부르기도 하고, 생존자는 나오라고 애타게 소리 쳤으나

그는 찾을 수 없었다. 실종? 포로? 갖은 생각 속에 부대로 돌아와야 했다.

 

그날 저녁 무렵 2802부대는 착 가라앉아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위해 식당에 모여 있었지만 누구도 식사에 손을 대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정문 위병소에서 전갈이 왔고, 누구의 입에선지 알 수 없지만

환호가 터져 나왔다. “와! 주 용호 하사가 온다.” 이렇게 그 밤에 우리부대원 4명중에

단 한사람의 생존자만 남기고 장열하게 그 전장의 꽃이 되었다.

훗날

우리가 호이안 전선으로 이동을 했고 내가 귀국하기 한 달 전쯤에

손 희태 중위를 만날 수 있었다.

빈손군청의 비극을 말하자 그는 말했다.

“서 용구 선배에게는 할 말 없지만, 그래도 내 주먹이 백만 불짜리야” 라고 한다.

그 후 우리는 손 희태 중위의 월남군 대위폭행사건을 “백만 불짜리 주먹사건” 이라고

부르곤 하면서 비운의 서 용구 대위는 C레이숀 한 BOX도 못 먹고 전사했다며,

애석해 했다.




그런데, 당시를 기억하시는 선배들은 그 날짜를 67년 8월경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서 용구 대위를 난생처음 만난 시점이,

1967년 11월말쯤 이라는 사실인데, 만약 선배님들의 기억이 옳다면,

내가 만난 서 대위는 유령임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보훈처 기록에도 역시 서 대위의 전사 날짜가 1967년 12월 3일로 남아있다.

선배님들께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맹세코 내 기억이 사실입니다.

 

 
이름아이콘 운영자
2009-01-20 20:28
먼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초심님의 전투수기 생생하게 잘 읽었습니다.계속 건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름아이콘 최원일
2009-10-03 12:44
67년 11월말께면 저도 그배타고 갔죠. 정확히 11월14일 부산항 출발한 17제대병력이죠.
그배엔 백마가 주력이고 청룡과 비둘기 그리고 주월사 일부도 함께타고 갔습니다.
다른배들은 대부분 5 ~ 6일이면 다낭 거쳐 나트랑에 도착했는데 저희가 탄 배는 태풍에 휘말린 일본상선을 인도하느라 며칠더 고생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한배를 타고 월남전에 참여했던 고 서대위님과 그대원들의 숭고한 희생에 머리숙여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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