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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참전우회
작성자 신 포청천
작성일 2011-08-31 (수)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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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도 제 4차 이사회가 8월 29일향군회관에서 열렸다

2011년도 제4차 이사회

 1. 2011년도 제 4차 이사회가 8월 29일 향군회관 7층 회의실에서 열렸습니다. (위사진 우측 각지역 지부장-1)
 2. (위사진 우측 각지역 지부장-2)
 3. (위사진 좌측 이사-1)
 4. (위사진 좌측 이사-2)
 5. (위사진 좌측 이사-3)
 6.
 7. 회의 마치고 야외에서 잠시 담소
 8 강원도 장건상 이사
파병효과 50억 달라
제목 : 월남전 파병을 통해 벌어들인 50억 달라.
 
아시아 역사상 유일하게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그곳까지 갔었다
 
일본의 어느 대학에서 2년 전 경험했던 일이다. 실명을 밝힐 수는
없지만 한국인 A 교수가 대학에 와서“한국의 경제 성장 과정" 을
주제로 강연을 했었다.
 
그는 일본인들 앞에서 한일회담을 통해 일본이 한국에 제공한 대일
청구 자금 8억 달라(경제 협력 자금 포함)가 경제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틀린 말은 아니지만 A 교수는 역사의 절반만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경제를 만든 기초는 누가 뭐래도 박정희 대통령의 월남전
파병이었다. 월남전 파병은 박대통령이 정치와 경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미국이 생각하기도 전에 먼저 제안을 한 것이다.
 
이는 관계자 증언을 통해서도 나왔지만 월남전 외교문서가 2005년에
전면 공개되면서 더욱 분명해졌다.
 
1965년 1월 6일자 대통령비서실 보고에는 박대통령의 고민이 묻어 나와
있다. 청와대 정무비서실이 박대통령에게 올린‘월남전 파병 문제에서
고려해야 할 문제점‘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당시 청와대는 미국의 의도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미국은 ‘한국군이나 필립핀군을 투입해 미 지상군과 대치시키고 미국
내외에서 비판 받고 있는 이 전쟁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한
대목이 그렇다.
 
박대통령은 보고서 끝에 친필 기록을 남겼는데 “파병은 불가피하나,
의용군의 형성을 취하고 충분한 대가를 받도록 할 것"이라고 되어있다.
 
박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월남전에 군대를 파병한다는
대의명분을 지키면서 경제 실리는 확실하게 얻겠다는 의지를 처음부터
가졌다는 의미이다.
 
월남전 파병은 결과적으로 박대통령의 의도가 거의모두 달성된 것으로
평가 할 수 있다.
 
국방부 공개 자료에 따르면 국군의 월남전 파병에 따라 국내에 유입된
거액에 외화는 국가 발전을 위한 원동력으로 경제. 사회. 발전에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유입된 외화를 부문별로 세분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 6.25.전쟁이 마무리 되면서 미국의 군사원조는 점차 감소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군의 월남전 파병을 계기로 다시 증가되기 시작했다.
전투부대가 파병됐던 1965년부터1973년까지 추가로 제공된 미국의
군사원조를 추산하면 약10억 달라 정도로 추산 할 수 있다.
 
둘째 : 미국정부가 파병된 장병에게 지급한 수당. 대한 물자구매. 기타
경비지출 등으로 국내에 유입된 외화를 약 10억 달라 정도로 추산한다.
 
셋째 : 월남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경제활동. 즉 용역 및 상품 수출 등
전쟁특수를 이용한 외화 수입을 약 10억 달라 정도로 추산 할 수 있다.
 
넷째 : 기타 선진국으로부터 한국에 제공된 차관 등과 함께 직. 간접적인
경로로 유입된 외화의 경제적 효과를 20억 달라 정도로 추산 할 수 있다.
 
따라서 국군의 파병에 따른 외화수입의 총액은 50억 달라 정도의 외화수입
효과가 발생 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보다 더 큰 효과는 과잉투자로 인한 국가 부도위기를 유입된 외화를
활용해 극복 할 수 있었으며. 국내경기를 활성화 시킨 사실이다.

아울러 정부 및 기업의 해외진출 경험을 활용해 차후 중동 진출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사실 등을 감안 할 때. 월남전 파병이 직.간접적으로 우리나라
경제. 사회에 미친 영향과 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박대통령의 월남전 파병 제안은 한국과 미국간의 현안에도 외교적 지렛대로
이용됐다. 미국이 워낙 강대국이었고 한국은 기아선상에 있던 약소국이라는
위상의 차이가 외교에 반영된 결과였다.

미국은 한국 정부의 요구를 거의 들어주지 않고 아예 무시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베트남 파병으로 미국은 사상 처음으로 한국정부를 외교의 동반자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원조 등으로 끌려 다니던 약소국 한국이 월남전 파병을
통해 미국정부가 오히려 한국의 눈치를 보게 만든 외교상의 쾌거였다.
 
외교문서에 따르면1968년 말 우리정부가 미국에 M-16소총 10만 정 제공 및
공장건설. 전폭기 17개 대대.전략공군 기지 건설 지원 등을 긴급 요청 했고.
미국은 요구 장비의 85% 수준을 약속한 것으로 나타나있다.
 
월남전 파병 이니셔티브(initiative)로 한국이 받아낼 수 있었던 가시적
성과였다. 월남전 파병을 통해 한미 양국의 안보 체제는 더욱 강화 되었으며.
특히 월남전 특수로 한국경제는 한 단계 더 도약했다.
 
아울러 월남전 파병으로 남.북한은 전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64년 1인당 국민소득을 기준으로 북한의 70%수준(북한153. 남한103달라)에
불과했던 남한의 소득이 1969년에는 북한이 194 달라로, 남한은 210 달라로
역전되었다.

1977년에는 남한이 1천 달라를 돌파함으로써 .북한의 20배에 가까운 소득을
달성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외국에서. 특히 일본인들을 상대로. 한국경제 성장과정을 설명할 일이 있다면
대일 청구자금과 더불어 국군의 자랑스러운 월남전 파병을 말해야 할 것이다.
 
아시아 역사상 유일하게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우리 국군은 그곳까지
갔었다고!

 
      사진: 대한해외참전전우회    (장 의 성 )
      글   : 대한해외참전전우회 창원시지회 홍보담당(김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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