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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참전우회
작성자 신 포청천
작성일 2010-06-17 (목)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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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참전자의 한을 풀어 주십시요(펌)
“하늘이여! ‘월남 참전자’의 원한을 풀어주소서...”
“땡~ 땡~, “땡 땡~“땡”

끊어질듯 이어질듯 호소하듯 애처롭게 들려오는 종소리, 사람들은 예사롭지 않은 종소리를 듣고 광장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광장에 매달린 종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임금님에게 상소하는 ‘신문고’(申聞鼓)였기에 더욱 궁금해 달려가며 서로 대화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종소리가 여느 소리 같지 않아요.” “저도 그렇게 들었어요.” 마침내 광장에 도착한 군중들은 종소리의 주인공을 보고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종을 치는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눈이 휑하고 비쩍 마른 늙은 군마(軍馬)였습니다. 얼마나 굶었는지 배가 훌쭉하고 갈빗대가 다 드러나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온 몸은 아물지 않은 전쟁의 상처가 역력했습니다. ‘군마’는 먹을 것이 없어 방황하다 마침 광장 한 가운 데, 늘어져 있는 종 줄인 마른 포도 넝쿨을 잡아당겨 먹다가 종을 치게 된 것입니다. 관가에서는 비록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무슨 사연이 있음을 감지했습니다.

도대체 이 말의 주인은 누구일까? 수소문 해보니 한 장군의 군마였었는데 늙고 병들자 버린 것입니다. 장군은 젊었을 때 군마와 더불어 전선에서 사선을 넘나들며 생사고락을 같이하였습니다.

 
군마의 도움으로 수 없는 전투에서 목숨을 건졌고, 영웅 칭호와 훈장을 받았습니다. 반면 늙은 군마는 전상의 상처를 끌어안고 시름시름 앓았습니다. 급기야 몹쓸 장군은 엄청난 은혜를 저버리고 생명의 은인인 군마를 내 쫓아 버렸던 것입니다.

이상의 이야기는 제가 초등학교 4학년(1959년), 11살 무렵 교과서에서 본 감동적인 글이었습니다. 당시 어린 마음이었지만 그 병든 군마가 얼마나 불쌍했는지 엉엉 울었습니다.

 
안타까운 추억을 가슴에 안고 세월이 흘러 현재 나이 63세가 되었고 기가 막히게도 그 버림받고 가엾은 병든 군마(軍馬)의 입장에 제 자신이 처하게 된 것입니다.

“월남 참전 그리고 고엽제 후유의증 등외 자”

제 소속은 ‘주월 한국군 맹호 26연대(혜산진부대) 전투 지원중대’로서 1971년 6월 27일 파월 ~ 1973년 3월 10일로 21개월의 전쟁을 마치고 철수부대로 귀국하였습니다. 60세 되던 해, 2007년 8월 이후 자고 나면 얼굴이 붓는 등, 몸에 이상이 와서 부산침례병원에서 검진결과 ‘고지혈증’ ‘고혈압’ ‘당뇨’였습니다. 다시 부산보훈병원에서 검진결과 ‘고혈압과 당뇨’는 ‘고엽제 후유의증’으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런데 보상이 따르는 ‘고도, 중등도, 경도’의 기준에는 미달되므로 ‘고엽제 후유의증 등외 자’로 분류 되었으니 보상은 없고, 다만 보훈병원에서 약을 무료로 타다 먹으라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그래도 중증이 아니기에 다행으로 생각하고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저의 친구 중 ‘백마용사’는 ‘고도 판정’으로 보상을 받으나 차마 보기 민망하며 일상생활을 포기한 채 보훈병원에 입원하고 있습니다.

이 무렵 저는 1948년생인 저의 세대들이 걸어온 발자취로서 ‘어린 시절 6.25의 눈물, 청년시절 월남전쟁의 피, 장년시절 중동 건설현장의 땀’등의 제가 겪은 삶을 현장을 담아서 기록했습니다.

 
제목은 ‘아버지의 발자취 눈물 피 땀’이라는 수기였습니다. 이글을 쓰게 된 동기는 오늘날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밑거름에 우리 세대의 ‘눈물 피 땀’이 존재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후 3년 동안 보훈병원에서 약도 무료로 받고 검진도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등외 자’의 처우에 대해 ‘국가가 참전자를 버렸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고엽제 등외 자’는 10만이 넘으며 아무 보상도 없이 매달 아픈 몸을 이끌고 단지 약만 타러 보훈병원에 갈 뿐입니다. 하루 쉬고 병원 간다는 것이 경제적으로 너무 힘듭니다. 그러므로 ‘등외 자’에게도 최소한의 수당은 지급해야 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경제 현실이 어려우면 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안고 가겠지만 세계 경제 10위 선진 세계화를 외치며, 민주화 유공자 보상, 선진 복지 정책을 펴낼 때 우리 참전자는 어설픈 보훈정책에 심한 소외감과 자괴감과 냉대감에 몸을 떨어야 했습니다.

 
 2010년 6월 현충일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내용 중 “국가위해 희생한 분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하셨으며 보훈정책을 올바로 정비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부디 대통령과 대한민국은 늙은 군마(軍馬)를 버리지 마시기를 애원합니다. 이제 우리의 형편과 처지 그리고 절실히 요구되는 사항을 정리해서 탄원을 올리겠습니다. 부디 보훈정책에 반영이 되므로 얼마 남지 않은 생명, 우리 월남 참전 전우들의 생애에 희망을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1. 우리가 처한 서글픈 현실, 2. 우리 요구의 당위성과 필연성 순으로 올리겠습니다.

1. 우리가 처한 서글픈 현실

첫째, 전쟁 후유증

‘전쟁 참전자’ 40여년이 넘게 흘렀지만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상처들을 갖고 평생을 살아갑니다. 이런 감추어진 아픔을 얘기하면 믿으시겠습니까? ‘한 밤중 환상 속에 M16 소총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식은땀에 흠뻑 젖어 헛소리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가면’ 믿으시겠습니까? ‘잠결에 조명탄 띄우고 크레모아 터트리고 수류탄 투척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날에 너무 충격적인 참상이 나를 사로잡고 환상 속에 떨고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지금도 정글 속에 갇혀서 어둠속에 길을 잃고 방황하다 벌떡 일어나 흐느껴 운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지금도 날짜를 세며 애타게 귀국선을 기다리며 밀림 속에 묶여 있다면’믿으시겠습니까? 참전자들은 모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를 안고 살아갑니다. 이는 과거 신체적인 손상 및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후 나타나는 정신적인 장애입니다.

만성의 경우 후유증이 심해서 환자의 30% 정도만 회복되고, 40% 정도는 가벼운 증세, 나머지는 중등도의 증세와 함께 사회적 복귀가 어려운 상태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월남 참전자들은 본인의 의사에 따라 국가의 책임 하에 특별 보호 관리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대한민국은 ‘PTSD’ 증후군에 따른 심리 치료를 받거나 보호 관리 같은 경우는 아예 사치에 속하며 그대로 방치 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둘째, 경제의 밑거름

1948년 태어나서 일제의 사슬로부터 해방되었고 바로 1950년 6.25전쟁의 참화, 아무것도 없는 잿더미였습니다. 고픈 배를 꿀꿀이죽으로, 원조 물자 강냉이 죽과 우유가루로 연명하며, 하루 두 끼 수제비의 연속이었습니다. 먹고 살아야 하겠기에 ‘아이스케키 얼음과자’를 외쳤고 매서운 추위에 벌벌 떨며 신문팔이로 거리를 달렸습니다.

그리고 청년이 되어 국가의 부름을 받았고 끓는 피를 자유와 평화를 위해 베트남전에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의 초석을 놓았다는 것에 큰 자부심으로 살았습니다. 이 무렵 우리 세대의 대 부분은 가난의 굴레를 벗기 위해 중동으로 향했습니다. 저 역시 그 대열에서 바레인. 이라크 등에서 3년간 땀 흘려 일했으며 당시 1979년을 전후로 박정희 대통령께서 시해 당하실 때였습니다.

저는 현대건설로 갔었으며 앞서 이명박 대통령께서는 현대건설의 사장님이셨습니다. 귀국 후 그렇게 바라던 결혼과 집을 한 채 장만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또 다른 소명이 주어졌고 그래서 중단했던 공부를 하면서 낮은 곳으로 임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훨씬 흘러 현재 부산에 살면서 살아야 할 집 문제로 ‘부산시 북구 주공율리임대 아파트’에 들어가려고 서류를 작성해 들여갔습니다.

순위를 결정하는 우선권에 ‘국가 유공자’가 있었지만 저는 ‘참전 유공자’로 해당 사항이 없었습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이 있겠거니 생각하고 스스로 위로 했지만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참전유공자’에 ‘병든 고엽제 등외 자’ 오늘 아침 부산 금곡고등학교 정문에 이런 현수막이 걸려있었습니다. 6월 보훈의 달 <호국의 빛 애국에서, 미래의 빛 보훈에서> 우리 병든 참전자에게 미래의 보훈의 빛은 언제 쯤 비춰질까? 고개를 떨어뜨린 제 눈에는 이슬이 맺혔습니다.

셋째, 보훈 행정의 현실

현재 월남 참전자에게 지급되는 수당은 만 65세 이상 9만원으로 참으로 부끄러운 보훈 현실입니다. 더구나 참전자 모두에게 지급되어야지 어떻게 해서 만 65세를 정해 놓았습니까? 다수의 참전자는 고엽제로 시름시름 앓다가 수 없이 세상을 뜨는 데, 그나마 남은 전우는 더 이상 기다릴 힘도 여력도 없습니다. 일반적 상식선에서 당시 우리의 적이었던 월맹군이나 베트콩은 우리보다 더 나은 정신적, 물질적으로 보상 받는 다고 합니다.

심지어 6.25 당시 우리의 적인 중공군 참전자들도 그들의 나라에서 실질적 보훈 혜택을 입는 다고 합니다. 이들의 나라가 우리보다 잘살아서 입니까? 아닙니다. 다만 우리의 정책 입안자의 보훈 철학의 부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기회에 미국이나 호주 등 선진 보훈 정책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보훈처가 힘이 없고 재정이 안 된다면 차라리 복지부에서 병든 참전노인들을 관리하는 것이 훨씬 더 났겠습니다. 이런 보훈 정책으로 애국을 요구할 수 없으며, 아무도 애국하며 희생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2. 우리 요구의 당위성과 필연성

우리 월남 참전자들이 조국으로부터 수 없이 들어온 약속이 있습니다. 그것은 “살아 돌아오기만 하오, 조국이 책임지겠습니다.” 우리는 용기를 얻고 총알이 빗발치고 포탄이 지축을 흔드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았고 조국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때 애석하게도 전사자 5,077명을 가슴에 품고, 상이용사 15,000명을 부축하며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병든 노병들은 잊혀 졌고 겨우 현충일에 ‘국가가 책임지겠습니다.’라는 말만 40여년을 들어왔습니다.

살아 돌아 온자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다이옥신 이라는 고엽제 증세로 인해 밤낮으로 괴로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전우들 중 다수가 너무 힘들고 지쳐 ‘스스로 삶의 끈’을 놓을 때 우리 힘없고 병든 노병들은 소리 없이 눈물을 삼키며 전우들을 태극기에 싸서 배웅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는 차라리 이름 모를 밀림에서 지뢰를 밟아 ‘전사’라도 했더라면 이런 치욕스럽고 구차한 삶은 없었을 텐데 하며 자조 섞인 넋두리를 해 댑니다.

첫째, 우리 요구의 당위성

A. 국가 유공자

우리의 선배 6.25 참전용사 노병들 전원 80 이 넘으신 분들로 2008년 9월 29일 부로 ‘국가 유공자가’되었습니다. 아니 그러면 지금까지 누가 국가 유공자가 되었단 말입니까? 누가 보훈처의 주인이 되었단 말입니까? 땅을 치고 통곡해도 시원치 않은 기막힌 일들이 이 땅에 자행되어 왔습니다. 세계 전쟁역사에 참전자가 60년이 지난 후 ‘국가 유공자’로 인정받아 참전수당 거금 9만원을 받고 복지 혜택 누리므로 경축한다니 부끄러운 일입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왜냐하면 저의 아버지도 6.25 참전자이신데 이런 명예를 누리지 못하고 세상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월남 참전자의 국가 유공자’ 차례입니다. 우리 역시 40년이 넘게 세월을 흘려버리고 말았습니다. 대 부분 고엽제로 건강이 좋지 않아 6.25 선배들만큼 살 수 있을 런지 모르겠습니다. 국회에 안건상정이 다 이루어져 곧 표결만 남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전쟁이 무엇인지 아셨던 저의 부모님은 파월 전 오음리 훈련소에 면회를 오셨습니다. 얼마나 놀라고 가슴이 찢어지셨겠습니까? 어쩌면 이 세상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아들을 끌어안고 어머니는 대성통곡하셨고 아버지는 그래도 사나이라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셨습니다. 제가 ‘국가유공자’가 되면 제일 먼저 아버지 영전에 바칠 것입니다. 그리고 외칠 것입니다. “아버지 자랑스러운 아들이 국가로부터 명예를 인정을 받았습니다.”


B. 실질적 예우

① 참전자의 수당 :

월남 참전자의 수당은 실질적이어야 하며, 65세 이상을 폐지해 주시기를 강력히 요구합니다. 그리고 목숨과 바꾼 전쟁 수당이 9만원 이라니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다행스러운 일은 근자에 ‘지자체’ 여기저기서 우리의 딱한 현실을 이해는 분들이 앞을 다투어 예산을 세워 3~5만원의 수당으로 위로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문제는 중앙정부는 꿈쩍도 않는 다는 것입니다.

2010년 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월남참전자의 애환에 대해 매스컴이 얼마나 인색한지 모릅니다. 다행스럽게 모 방송이 우리의 비참한 현장을 취재해서 잠시 내 보냈습니다. 물론 나라의 큰살림을 맡아 여기 저기 돈 쓸 곳이 많겠지만 순위에 있어 우리 병든 참전자가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건강과 생명은 결코 기다려 주질 않습니다.

② 등외 자의 수당 :

‘등외 자’는 보통 1~2달에 한 번 보훈병원에 가는 데 일상생활에서 하루는 쉬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통비등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외 자에 대한 보훈 처우는 약만 지어주면 국가는 의무를 다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전상자들에게 베푸는 자비와 온정입니다.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앞 선 ‘등외 자 전우들이’ 수 없이 정부를 향해 탄원을 두드려 왔습니다.

하지만 보훈의 문은 굳게 닫혔고 그렇게 하다하다 지쳐 쓰러졌고, 급기야 하나씩 둘씩 119에 실려 중증 환자로 분류됩니다. 그때야 부랴부랴 ‘고도니 중등도니 경도’니 하며 몇 푼의 수당이 주어집니다. 이미 신장은 기능이 다 망가져서 혈액 투석을 받아야 겨우 등급이 주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 이전에 ‘등외 자’에게도 얼마간 보상이 주어지면 그것으로 건강의 기회를 늘릴 수 있건만... 애원합니다. 간청합니다. ‘등외 자’에게도 희망을 주십시오.

③ 고엽제 미망인과 남겨진 자식들 :

우리가 세상 떠나면 남겨진 아내와 자식들에게 반드시 예우가 있어야 합니다.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겠다.”라는 것은 이들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 아닙니까? 우리가 세상 떠나도 국가 유공자의 명예가 가족들에게 남겨지므로 저소득층이 아닌 국가 유공자로 최소한 임대아파트 만큼은 살게 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그리고 미망인들에게 실질적으로 경제적 도움을 주시기를 애원합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우리 참전자에게 ‘그런 약속이 주어진다면 오늘 세상 떠나도 눈을 감을 것입니다.’

둘째, 우리 요구의 필연성

우리 ‘월남 참전자들의 요구’가 지나치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사정은 어떠했습니까? 세계 최하위 빈국 중 하나였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잿더미 위에 오늘의 경제성장의 풍요에 대해 누가 기초 석을 놓았단 말입니까? ‘아니오.’하는 분들은 동작동 현충원에 가보십시오, 그곳에 서면 바람결 소리에 ‘우리를 기억해주오’라는 피맺힌 절규를 들을 것입니다. 혹은 우리 전우의 피로 깔은 경부고속도로를 달려보십시오. ‘우리를 기억해주오’라는 한 맺힌 탄식을 들을 것입니다.

우리 전우의 ‘눈물 피 땀’은 달러로 바꾸었고 포항 제철을 비롯하여 원자력 발전소를 세웠고 경제 성장의 초석이 된 것이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첫 파월시 우리는 2차 대전 당시 쓰던 낡은 M1 소총과 칼빈 소총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개선 귀국할 때는 모두 M16으로 무장했습니다. 저는 철수 부대로 무장을 한 채 1973년 3월 9일 퀴논 푸캇 비행장을 이륙 대구 동춘 비행장에 내렸습니다.

그리고 화약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M16을 앞에 총한 채 당당하게 시가지 개선행진을 벌렸습니다. ‘아 그날의 감격을 무엇으로 대신하겠습니까?’ 조국 대한민국 사랑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결코 우리 월남참전자들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때가 되면 우리 월남참전 노병들이 경제성장의 주역으로 그리고 국위선양이 인정되고 명예가 드높여 질 때 우리는 광하 문에서 ~ 동작동까지 퍼레이드를 벌린 것입니다.

그때 우리 참전노병들은 대한민국의 아들 손자의 손을 잡고 행진하며 애국심과 국군의 책임과 의무가 무엇인지 생생하게 가르칠 것입니다. 우리 세대가 체험한 ‘눈물 피 땀’을 후손의 가슴에 새겨 넣어 저들도 그 발자취를 따르며 대한민국을 영원히 기리게 할 것입니다.

<월남참전 고엽제후유의증 등외 자, 부산에서 정정관 올림 : 2010년 6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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