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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참전우회
작성자 신 포청천
작성일 2010-07-29 (목)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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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추천: 0  ㆍ조회: 842      
IP: 112.xxx.85
해군본부에 조회결과 "DJ의 군복무"

 
나는 돈이 없습니다.
새로 나왔다는 '김대중 자서전'에는 진실이 단 한 줄이라도 있을 것인지 궁금하여 한 권 사서 보고픈 마음은 있습니다만, 김대중에 관한 한 제겐 그의 책을 살만한 돈은 절대로 없습니다.

여러 자료에 의하면,
예를들어, 구글 네이버 다움 야후 및 손충무의 '인사이더월드'나 배부전의 '유니티프레스' 등에 보면 김대중의 거짓과 진실이 적나라하게 표출돼 있었습니다.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ㅈㄹ민국이라던가 ㅎㄴ민국 국민들의 다함없는 존경과 끝없는 신뢰를 받고 있는 그에게도 부모는 있었을 것이니,

돈이 있어 '김대중 자서전'을 사 보게되면 혹 알 수 있을지도 모를일이나, 나는 그런 돈이 없기에 여기서 시스템클럽 가족 여러분께 공개적으로 묻습니다.  

위의 여러 자료에 보면,
김대중에게는 장노도라는 어머니와 네 사람의 아버지가 등장하는데,

1). 제갈성조(동생/ 하의도의 뱃사공/ 장노도의 첫번째 남자)
2). 제갈성복(형/ 동생 제갈성조가 뱃길에서 죽자 그녀를 돌봐줌/ 장노도의 두번째 남자)
3). 윤창언(장노도가 임신하자 친구 윤창언에게 장노도를 맡계 주막을 차려나감/ 장노도의 세번째 남자)
4). 김운식(하의도 부자로 소문난 그 주막 단골손님/장노도를 세번째 첩으로 맞아들임/ 장노도의 네번째 남자)

참고사항 ㅡ,
1). 김대중은 제갈성조(동생)거나 제갈성복(형)의 씨앗(아들)일 것으로 여겨지나
2). 윤창언의 주막에서 태어나 '윤대만'으로 자라다가
3). 김운식(김해김씨)의 서자로 성장하면서 '김대중'으로 바꿔 호적등록 했다고 함.

그렇다면, 법률(호적법)상의 아버지는 김운식임에 틀림 없을 것이나,
생물학적(DNA) 아버지는 제갈성조(동생)와 제갈성복(형), 또는 윤창언 등 세 남자 가운데 어느 사내인지, 거기 누구 아는분 없으십니까?

거듭 강조 합니다.
나는 '김대중 자서전'을 살 돈이라고는 단 돈 1 전도 없습니다.

(10.07.31.김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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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여러분께서 자유게시판에서 언급하신바가 있으시지만, 워낙 중요한 사안이라 다시 한번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다음의 두가지를 일독하시길 권합니다.
읽어 보시면 느끼시겠지만, 참으로 교활한 사람입니다.

1. 전라도 완도군 출신 고 손 창식씨의 월간조선 2005년 1월 증언 "DJ 출생 비밀 추적 인터뷰"
   (혹은 http://blog.naver.com/szasddse/10050259962)
2. 미주 인터넷 신문 Inside the World의 손 충무 칼럼 "김대중, 그는 金大中인가? 尹大中인가? 諸葛(제갈)大中인가?
   (http://usinsideworld.com/article/view.php?bbs_id=news&doc_num=8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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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광주공권력이 필자에 가한 폭력과 린치 -지만원 박사

5.18은 광주인들 만이 독점하는 지역의 역사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공유하는 국가의 역사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5.18역사는 광주가 독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역사에 대한 평가는 분석가들의 몫이다. 학자가 해야 할 일을 정치인들이 대신한다는 것은 학문에 대한 영역침해이며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한국의 정치인들은 학문의 영역을 침범했다. 학문적 조사가 이루어지기 전에 정치인들이 나서서 화해, 타협, 절충 차원에서 민주화운동이라는 딱지로 5.18의 상처를 봉합한 것이다. 이러한 봉합은 상처에 대한 봉합일 뿐, 진실에 근거한 것은 아니었다. 그 후 5.18의 진실을 캐는 일은 학문적 차원에서 추구돼야 할 숙제가 돼야 했다. 하지만 인터넷 바다에 게시된 1,500만개 규모의 글들, 시중에 나도는 책들 그리고 제4공화국, 제5공화국 등 수많은 방송프로들에는 5.18의 성역화를 다지는 내용들과 왜곡된 내용들로 가득하고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내용들은 별로 없다. 영화 ‘화려한 휴가’는 그냥 전두환과 공수부대를 모략하기 위한 허위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역시 역사왜곡 작전의 하나였다. 그 많은 표현물들 중에 진실은 보이지 않는다. 방대한 원천 자료들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데도 기인했겠지만 이보다 더 큰 이유는 5.18이 이미 성역화로 굳어져 있는데다 그 성역을 방어하는 세력의 힘이 너무나 엄청나기에 감히 누구도 그 도도한 물살을 거스를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5.18은 민주화의 상징이요, 광주는 민주화의 성지”로 더욱 공고하게 굳어져가고 있다.

민주화의 광풍은 한국판 쓰나미였다. 그 쓰나미 앞에서는 진실이 허위가 되고, 정의가 악이 되고, 논리도 무시됐고, 일사부재리를 규정한 헌법도 무시됐다. 계엄사령관이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비상계엄 관리의 속도를 내게 한 것이 헌법 기능을 마비시킨 폭동이자 내란으로 내몰리고, 광주시위는 헌법을 수호하려는 준-헌법기관으로 등극한 반면, 이를 진압한 계엄군은 내란목적 살인마가 됐다.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지만 이는 엄연히 서슬 퍼런 대법원의 판결이다. 민주화 세상이 아닌 국가에 충성한 것이 반역으로 처단되는 무서운 세상을 맞이한 것이다. 5.18 성역을 지키는 병정들이 수십-수백만에 이르고, 대다수 국민들의 마음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고정관념이 형성돼 있고, 서슬 퍼런 대법원의 판결문이 있는 것이다. 누가 감히 이런 대세에 거슬리는 연구를 할 수 있겠는가? 감옥에 갈까, 테러를 당할까, 좌고우면 하지 않는 현대판 돈키호테가 나오기 전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세인들의 생각이다. 

필자는 대선을 앞둔 2002년 8월 16, 동아일보 및 문화일보에“대국민 경계령! 좌익세력 최후의 발악이 시작됩니다”라는 제하에 4,500자에 해당하는 의견광고를 냈다. 그 광고문에는 이런 구절이 들어 있었다.“쌀, 마늘 사건 등으로 농민을 분노케 해놓고, 거기에 노동세력, 홍위세력 등 좌익들이 불을 댕기면 광주사태의 확대판이 나올 수 있습니다. 광주사태는 소수의 좌익과 북한에서 파견한 특수부대원들이 순수한 군중들을 선동하여 일으킨 폭동이었습니다. 소요사태를 일으켜놓고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선거도 없고, 우익들이 잡혀가고, 김정일이 무혈로 서울을 장악하는 사태가 올 수 있습니다.”

이 의견 광고문이 나가고 많은 국민들로부터 격려를 받았지만 호남인들로부터는 도끼로 머리를 두 쪽 내겠다는 등의 험한 전화폭력에 시달렸다. 민주당은 2회에 걸쳐 성명서를 내 정부에 강경대응을 주문했고, 오마이뉴스는 필자를 정신분열증환자로 매도했다. 그 다음 5.18단체가 나섰다. 5.18부상자회 회장 김후식씨가 2002년 8월 20일, 검은 유니폼을 갖춰 입은 11명의 어깨들을 이끌고 올라와 다수의 경찰이 보는 앞에서 충무로에 소재한 필자의 사무실에 들어와 기물을 부수고 소리를 질렀다. 건물주에게 협박을 가하면서“사무실을 거두어들이겠다.”는 각서까지 받아갔다. 5층 건물에 세 들어 업무를 보던 수많은 사람들이 한동안 공포에 떨었다. 이어서 안양에 소재한 필자의 아파트로 달려와 수많은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차를 부수고, 대문을 부수며 무력시위를 벌였다. 주민들로부터 빈축을 받자 이들 검은 유니폼의 어깨들은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일제히 허리를 굽혀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외친 후 철수했다. 그나마 필자와 가족들이 현장에 없었던 것은 어느 경찰이 빨리 대피하라고 귀띔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경찰들은 이들의 행패를 구경만 했다. 

그다음에는 MBC 손석희씨가 필자와 전화를 연결하여 인터뷰를 했다.“현직 대통령을 드러내 놓고 빨갱이라고 하시는데 한 가지 근거라도 대 보십시오”라고 했다. 필자는“김대중은 23세에 노동당에 가입했고, 광주사태를 배후 조종했으며, 대통령이 되어서는 알게 모르게 적장에게 군자금을 대주면서 지뢰제거, 남침통로건설 등 남한의 안보를 통째로 허문 좌익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아침 7:30분의 인기프로를 청취하는 국민에 생방송 되었다. 그 다음에는 광주검찰이 나섰다. 최성필 검사(현 서울중앙지검 공안부)가 5.18측으로부터 고소장이 제출됐으니 광주로 내려와 조사를 받으라고 했다. 필자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관할지역인 수원이나 행위지인 서울에서 조사를 받게 해달라며 사건이송요청서를 제출했다. 이에 대해 아무런 연락이 없던 광주검찰은 2002년 10월 22일, 16:00시에 최성필 검사실 조사계장 김용철을 필두로 광주서부경찰서 순경 3명(이일남, 박찬수, 이규행)을 이끌고 필자의 아파트에 들이닥쳤다. 러닝머신을 한 다음 샤워를 하고 팬티바람으로 있는 필자를 옷도 입지 못하게 하면서 무작정 끌어내려 했다. 종이조각(체포영장?)과 신분증을 눈앞에 슬쩍 스치게 하면서 대검찰청에서 나왔으니 가자고 했다. 자세히 보자고 했더니“너 같은 놈에게 이런 걸 왜 보여주냐”하면서 옷도 입지 못하게 하고 끌어내리려고만 했다. 필자는 이들이 조폭인 줄로만 알았다.

이들은 수갑을 뒤로 채운 채 5시간 이상 차속에서 린치를 가했다. 온갖 저속한 욕설을 했다. “우익새끼들은 모조리 죽여버려야 한당께, 야 이 개새끼야, 네깟 놈이 무얼 안다고 감히 5.18을 건드려, 뭐 이런 싸가지 없는 개새끼가 있어, 야, 이 새끼야, 너 이회창으로부터 얼마나 받아 챙겼냐, 이런 새끼가 무슨 대령 출신이야, 이런 새끼가 무슨 육사 출신이야, 대령질 하면서 돈은 얼마나 챙겼냐, 부하 꽤나 잡아 쳐먹었을꺼다” 등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언어폭력에 시달렸다. 뺨도 때리고 머리도 쥐어박았다.30차례 되었다. 검사실 김용철서부경찰서 이일남이 가장 악질적이었다. “야, 이 새끼야, 네깟 놈은 가다가 중간에서 죽여도 표도 안 날 꺼다, 네깟 놈이 때렸다고 말해도 증인이 있냐? 증거가 있어?”그야말로 자식 벌 되는 사람들에게 수모를 당한 것이다. 이 땅이 과연 대한민국인가 싶었다. 

광주검찰 615호실에 도착하니 최성필 검사가 잡아먹을 듯 소리를 질렀다. 조사를 하는 중에도 뒤로 채운 수갑을 풀어주지 않았다. 최성필 검사의 이웃 검사로 보이는 여성이 와서 합세했다.“당신이 시스템공학 박사요 엥, 시스템공학이란 게 있당가, 어디서 학위를 받았소?, 처음 듣는 건디 이거 가짜 아냐? 좀 알아봐야 겠구만, 어이 좀 알아보소, 당신 눈에는 광주시민 전체가 빨갱이로 보이요? 광주가 아니었다면 한국에 무신 민주주의가 생겼겠소. 어림도 없재이 참말로 잉~”저녁 식사를 하라면서 수갑을 풀어주었는데 손이 두껍게 부어오른 데다 팔 자체를 들어 올릴 수 없었고, 손가락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깨는 물론 등판 전체가 손바닥 보다 더 두껍게 부어올라 부기가 가시는 데만도 4개월 정도 걸린 것 같다.  

2002년 10월 24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의를 맡은 부장급 판사 정경현(당시45세 1957년생 전남 함평)은 필자의 변론을 맡은 광주출신 변호인(당시66세)에게“변호인은 광주 시민들에게 무슨 욕을 들으려고 서울 사람의 재판을 맡았소”라며 아버지 벌 되는 분에게 모욕을 주었다. 변호인이 필자의 경력과 훈장 받은 사실들을 나열하자“시끄럽소, 지저분한 신문은 집어치우시오”라고 또 한 차례 면박을 주었다. 이어서 정경현 재판장은 필자를 삼킬 듯이 노려보면서“당신이 광주에 대해 무얼 아요? 나는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소. 구속영장은 발부됩니다. 이상이오” 할 말이 있으니 발언권을 달라고 요구했더니 그는 매우 못마땅해 하면서“구속영장은 발부되니 말해보시오”라고 했다. 나는 구속사유를 저지르지 않았으며 이 사건은 구속 요건에 해당하지도 않는다는 요지로 말을 하려 했지만, 대세는 이미 기울어져 있었다. 불과 두 마디 정도 듣고서는“시끄럽소”하며 노려보았다. 10월 30일, 구속적부심 재판이 열렸다. 김용출 부장판사(1959년생 전남 장성)가 시니컬하게 웃으면서“나의 형님도 아무런 죄 없이 계엄군에 가서 몇 시간 동안 고초를 받고 왔소. 이런 건 어떻게 해석해야 되요?”

체포되기 전, 필자는 5.18단체들이 필자에 가한 폭력행위에 대해 서울지검에 고소했다. 정작 서울에서 다뤄야 할 이 사건이 또 광주로 이송됐다. 이 사건을 이송 받은 최성필 검사는 이들에 무혐의 및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이때 필자에게 비친 광주는 대한민국 상위에 존재하는 점령군사령부였고, 대한민국 상위에 군림하는 광주공화국이었다. 그런데 매우 기이하게도 필자가 출소한지 몇 달이 되자 광주검찰이 필자를 법정의 증인으로 불렀다. 서울과 안양에서 벌였던 김후식 등의 폭행사건에 내렸던 기소유예 결정을 취소하고 다시 기소하여 재판을 연 것이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필자에 대한 1심재판부는 처음‘고단’으로 분류된 단독사건이었으나 2002년 11월 27일에 갑자기 합의부로 전환됐다. 신중히 했다는 모양새를 갖추려 한 것으로 보이지만 판사 3명이 모두 호남출신(재판장: 전성수, 판사: 조재건 윤영훈)이었다. 형사소송법 제15조는 지역정서가 작용하는 본 사건을 광주지법 이외의 다른 지역 법원으로 이송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필자의 변호인들은 이 지역정서와 관할권을 이유로 관할이전신청을 3회씩이나 냈지만 광주지법은 이러한 법의 정신과 실정법을 무시했다. 대법원에 상고를 했지만 대법원은 검찰과 법원이 저질렀다는 그 정도의 사실들만으로는 광주가 지역정서를 가지고 재판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결론을 냈다. 서울 사람이 서울에서 광고문을 냈다 해도 광주의 정서를 건드렸다면 광주에 가서 재판받는 것에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낸 것이다. 광주 앞에서는 대법원도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주지법 판결문의 범죄사실은 이러했다.

5.18 민주화운동은 1980.5.18을 전후하여 전라남도 및 광주시민들이 비상계엄의 철폐를 요구하는 등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하여 벌인 민주화운동으로 국회에서 의결, 공표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광주민주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보상등에 관한 법률 등에 의하여 정립된 지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들 및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사망한 자들이 마치 소수의  좌익과 북한에서 파견한 특수부대원들에 의하여 선동되어 일으킨 폭동인 것처럼 묘사하여 위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들 및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사망한 자들을 비방할 목적으로 문화일보와 동아일보에 광고하여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피해자 이동춘, 같은 김후식 등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들의 명예를 훼손함과 동시에 사자인 피해자 정지영 등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명예를 훼손하였다.

국회가 의결한 것이면 모두가‘진실한 사실’이며, 이에 어긋나는 사관은‘허위사실’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 무효화되고 있는 세종시특별법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와 같이 필자는 정치인들이 의결한 내용과 다른 내용으로 사관을 피력했다는 죄로 투옥된 지 101일 만에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의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광주인들은 한 학자의 역사관을 법정에 세웠고, 역사관에 죄를 때린 것이다. 광주의 분서갱유라 아니할 수 없다. 이른바 좌경학자들이 썼다는“해방전후사의 인식”이 이 나라 일각에 왜곡된 역사관을 심었다. 최근에는 이를 뒤집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라는 역사책이 발간되었다. 김대중-노무현 시대에는 1948년의 4.3사건에 대해서도 기존의 사관을 뒤집는 새로운 역사를 썼고, 1989년의 동의대사태에 대해서도 역사를 다시 썼으며, 6.25와 건국에 대한 기존의 역사관을 뒤집는 새로운 역사관들도 나오고 있다. 우후죽순처럼 기존의 역사관들을 뒤집는 좌익사관들은 공론의 시장에 자유롭게 등단하고 있는데 유독 5.18에 대해서만은 공론의 시장에 올라올 수 없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필자가 5.18에 대해 피력했던 역사관은 5공시대에 형성됐던 역사관 그대로였다. 단지 5공 시대에 형성됐던 역사관을 피력했다 해서, 당시를 살았던 현역 중령으로서 그리고 그 후 군사 및 안보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세월을 통해 나름대로 형성했던 역사관을 피력했다 해서, 5.18 제 단체들로부터는 물론 광주경찰과 광주검찰로부터 생지옥 같은 폭력을 당한 것이다. 그리고 재판부로부터는 5.18에 대해 다른 시각을 거론하지 말라는 취지의 판결을 받은 것이다. 필자는 많은 국민들이 5.18을 민주화운동이라 부르고 광주를 민주화의 성지라 생각해도 이를 틀렸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사회에서는 필자의 판단도 그들의 판단도 다 같이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가 광주로부터 당했던 폭력과 판결은 그들의 판단만 존중돼야 하고 필자의 판단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5.18을 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린치를 당하고 광주에 있는 감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바로 이것이 5.18의 폭력이요 광주의 폭력인 것이다. 이러한 폭력과 재판은 민주화라는 거룩한 개념에 어울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분쟁의 당사자인 호남출신 법관들이, 분쟁의 다른 당사자를 광주로 끌어다가 재판한다는 것도 폭력이요 승복력을 상실하는 떳떳치 못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일반상식은 물론 법 상식마저 통하지 않는 광주에서, 필자의 심정은 호소할  길 없는 막막한 어둠의 공화국으로 잡혀 왔다는 느낌이었으며, 먼 외딴 섬으로 인신매매단에 잡혀 온 여인의 심정이 바로 이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97년의 민주화법원이 일사부재리를 규정한 헌법을 무시하고 1980년 법원의 판결을 뒤집은 것도 민주화의 폭력이라 생각하며, 수도권에 사는 필자를 광주로 끌어가면서부터 가했던 물리적 언어적 폭력과 재판도 헌법을 무시한 민주화의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민주화라는 거룩한 이름으로 자행하는 이런 폭력은 비단 신군부나 필자 만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 국민 모두에 가하는 협박이요, 그 협박의 수단으로 필자를 희생물로 삼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히 어떤 놈이 5.18을 건드려!”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지구는 돈다. 5.18 역사는 반드시 공론의 장에서 자유롭게 연구되고 표현돼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소신이다. 공론화의 자유를 박탈하는 행위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검색엔진 구글(goole.co.kr)에서“5.18”이라는 검색어를 치면 2008년 7월 4일 현재 13,500,000개의 글이 뜬다. 윤상원을 검색하면 53,000개의 글이 뜬다. 내용들을 보면 이 많은 글들은 대부분 이른바 민주화세력과 그 주변세력에 의해 게시되었다. 거의 모든 언론매체들이 5.18에 대해 긍정적인 기사를 썼고, MBC 드라마 제5공화국은 그 파급효과에서 절정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들이 정말로 5.18 역사를 정직하고 진실하게 묘사하고 있는가? 누구라도 그렇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유로운 역사의 규명작업수사자료를 공개하라대법원의 판결이 확정되고, 2004년 11월 11일, 검찰12.12 및 5.18 사건기록의 공개범위를 확정한 이후부터 시작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바다와 그 많은 언론매체에 떴던 자료들은 대부분이 수사기록을 참고하지 않은 것들이어서 그 신빙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은 그 기록들을 참고하여 쓴 최초의 것이다. 따라서 본 책자를 범죄시하고 탄압한다는 것은 부정확하게 쓰인 기존의 역사자료들만 존재할 수 있고, 수사 자료에 근거한 보다 새롭고 정직한 역사자료는 써서는 안 된다고 하는 또 다른 분서갱유식 폭력이 될 것이다. 필자는 5.18단체와 광주 법관들로부터 입은 아픈 상처를 딛고 이 책을 쓰면서 이로 인해 5.18단체와 광주의 법관들로부터 또 다른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안고 있다. 이 나라가 정말로 민주화된 나라라면 이런 공포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민주화를 세웠다는 그 민주화세력이 법 위에 군림하는 두려운 폭력세력으로 등장해 있는데다 왕왕 법정의 독재가 상식과 과학을 뒤엎는 판결을 내놓는 마당이라  공포심을 갖는 것이다.

5.18단체의 집요함은 끝이 없다. 2008년 6월 필자는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의 머리말 초안을 필자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시스템클럽’에 게시했다. 여기에는 이런 글이 있다.“필자는 10.26, 12.12, 5.18, 김대중 내란음모, 1995~97년에 걸친 역사바로세우기 재판 이 모두에 대한 기록들을 열람하였다. 이 모든 기록들을 보면서 필자는 5.18은 김대중 등이 일으킨 내란사건이라는 1980년 판결에 동의하며, 북한의 특수군이 파견되어 조직적인 작전지휘를 했을 것이라는 심증을 다시 한 번 갖게 되었다. 불순분자들이 시민들을 총으로 쏘는 것은 물론 제주 4.3사건에서처럼 잔인한 방법으로 살인을 저질러 놓고, 좌익들이 이를 군인들에게 뒤집어씌우는 소위 모략전을 반복적으로 구사함으로써 민주화 운동으로 굳혀가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심리적 내전’이 바로 5.18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에 5.18단체(신경진 부상자회장, 정수만 5.18현제자매가족회 등)들이 2008년 6월에 필자를 고소했고, 동시에 5.18에 대해 반대 시각들을 인터넷에 표현한 전사모(전두환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 등 38명을 무더기로 고소 고발했다. 2009년 7월 16, 수원지방검찰청 안양지청의 박윤희 검사가 필자의 위 글을 대상으로 정식 기소를 했고, 2009년 11월 12일에 열린 제2차 공판이 열렸지만 그날 증인으로 호출된 고소인 신경진은 오지 않았다. 형사재판 일정은 통상 2주 간격으로 잡히지만 이번 사건을 맡은 판사는 2개월 2일을 늦춰 2010년 1월 14일로 공판기일을 잡았다. 2010년 3월이면 판사들의 인사가 있다고 한다. 필자는 그를 휘몰아칠 46개의 증인신문용 질문지를 자료들과 함께 마련해 갔고, 이 재판에 관심을 보여주는 120여명의 시스템클럽 회원들이 법정의 바닥에 앉아서까지 신경진을 기다렸지만 그 시각 그는 나주에서 판사로부터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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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태그 : 광주폭동, 광주민주화운동, 광주사태, 전두환, 5.18, 김재규, 정승화, 장세동, 북한, 자유북한군인연합, 최규하, 12.12, 내란목적살인죄, 내란죄, 김대중, 유언비어, 대학살, 계엄령, 5.18 특별법, 화려한휴가,민주화운동, 동의대사태, 민주화투사, 민주화열사, 민주화, 국가유공자, 연금, 가산점, 호남지역, 전라도, 광주, 광주광역시, 지역감정, 경상도, 빨치산, 통일운동가, 문근영, 류낙진, 비전향장기수, 여순반란사건, 제주 4.3사건, 14연대, 이승만, 자유민주주의, 김정일, 김일성, 독재국가, 노태우, M16, 다이너마이트, 님을 위한 행진곡, 임을 위한 행진곡,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순국열사, 애국열사, 4.19, 좌익, 386주사파, 호남출신, 홍어, 홍어족, 흉노족, 경상디언, 전라디언, 수사기록으로 본 12.12 와 5.18 , 솔로몬, 베트콩, 조총련, 박정희, 박근혜, 육영수, 권영달, 장태완, 허삼수, 노태우, 박흥주, 차지철, 무기고, 탈취, 교도소 습격, 죄수, 해방, 석방


소강절
(글)******************************************************************************************************
 
부족하고 외람된 제 글에 이처럼 댓글 올려주신 지만원 박사님, 참으로 (가문의) 영광입니다...
그리고 댓글 올려주신 다른 분들께도 감사할 따름이고요.
뒤늦게 이같이 댓글 올려주신 귀한 분들이 계신 것을 보고서야
이렇게 마땅한 도리로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지만원 박사님의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최근의 진단 글도 읽었었습니다.
제가 전라도에서 살아오는 동안 어떻게 정신병자가 되가는 거
아닌가 의심하고 냉정해하고 스스로 혼란스러워 했습니다.
결국 지금에는 그게 모두 원인이 있고 이유, 내막, 논리가 있는 생각들이었다는 걸 큰 진실을 알게 된 듯 느껴가고 있습니다.
빨갱이의 고장이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는 것이죠.
이 고장사람들에 대해 품었던 의문과 저항감과 반항심 실망감을
박사님께서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에도
정확히 파악하시고 통찰하신 것 같더군요.

상식의 눈으로 보고 상식의 귀로 들어보면 이게 무슨 죽을 길 파는 짓인가 할 정도로
편집성적인 전라도인들의 세계관과 대한민국을 대하는 시선은 정말이지
힘만 남은 광기 그 자체입니다.
저는 박정희 전대통령은 하늘이 주신 분이고,
김대중은 악마가 내보낸 영혼없는 쭉정이라고 생각하네요.
자서전에서마저 그럴듯하게 미사어구와 잔머리 쓰는 요령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거짓을 일삼는 김대중의 양심은 결코 어느 세상에서든지 환영받지 못할 것 입니다..

생각이 이 정도로 대쪽같이 되어 있는 저인 이상 밖에서 마주치는
이 고장 사람들과 묘한 신경전이 오가곤 하기도 합니다.
눈빛, 어감, 분위기, 말소리의 높낮이, 헛기침 기타 등등의 의식과 마음의 작용으로 표시되는
모든 사람들의 행위 패턴은 그야말로 유치할 정도의 골수 용공사상과 반역사상에 경도되고
오염되어 있음을 간파하는 저와 서로 불평 불만어린 의식표현을 소리내곤 하죠.

솔직히 매일 매일의 바깥 생활이 그렇습니다.
세상은 변하는데 이 전라도는 죽은 김대중만을 망연자실 생각하고 그리워합니다.
이게 무슨 짓인지....
온 세계인류가 김대중을 비난하고 5.18의 실체를 성토할 때 과연 전라도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할 것인지...
5.18처럼 무기고를 털어 이제는 너죽고 나죽자며 막가는 식으로 나올지도 모르겠고
남쪽의 이 전라도는 미친 속이니까요...

그러고 보면 어떤 가치관이나 윤리도 도덕도 없고 정의관념도 없이 입으로만
좋은 말은 다해대는 사람들이 이 전라도 사람들이 아닌가 합니다.
진실로 사랑을 알고, 인생을 알고, 사람을 알고,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럴 수는 없는 것이죠.
참으로 저질스러운 사람들입니다. 유명환 외교부장관님의 말씀에 놀랐었습니다.
지박사님의 말씀처럼 백번 지당하고 옳은 말씀들입니다.
"남한의 지난 날의 독재는 공격하면서 북한의 독재는 왜 공격하지 않는가?"
참으로 답이 나와 있는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옳은 소리를 해대면 배째라는 식으로 배워먹은 막가파의 무지를 활용하며
끝내는 "그래서 그게 어쨌다고!..." 이런 소리를 해대며 얼굴 일그러져 눈부릅뜨는
이 사람들과의 입씨름은 옳은 사람만 해를 입는 결과에 이르고 맙니다.
그게 이 전라도 사람들의 속성이고, 붉은 사람들의 속성이 아닌가 합니다.
자신들이 무슨 식민지의 박해와 핍박에 한이 넘쳐서 구세주같은 김대중과 김정일을 위해
순교하는 고결하고 고귀한 자들인 것같은 행동들을 하는 것엔 헛구역질이 납니다.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정말이지 매일 진실을 알려주고자 황금같은 문장을 베풀어주시는 지만원 박사님의
노고에 감사 또 감사할 따름이고, 그 금빛을 더 닦아 빛내주시는 시스템클럽 회원님들의
아름다운 호응에도 끝없는 응원을 보냅니다.
지박사님의 정성어린 댓글 영원히 못잊을 것입니다.
그리고, 회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이 나라를 온전히 하는 데에 제 미력한 힘을 항상 보태겠습니다....

++++댓글로 올린 글인데 못보실 것 같아 게시판에 다시 올렸네요.+++++++

 
이름아이콘 신포청천
2010-08-09 17:37
5.18재판, 8월 13일 오전 11:20분 개최

다음 5.18재판은 이번 주 금요일, 8월 13일 11:20분입니다. 아마도 그 다음 기일에는 신경진이 출두할 것으로 믿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에는 ‘솔로몬 앞에 선 5.18’이 탄생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지난 8월 5일에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님을 위한 교향시’를 관람하였습니다. 약 40명 정도가 관람하였는데 사정상 홈페이지에는 공고를 하지 못했습니다. 누구든 전화만 하면 40명까지 인솔하여 그 영화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게시판에 2주 전에 예약날짜를 잡아, 본 홈페이지 게시판에 공고하셔서 모임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영화가 약 140분간 상영되니까 만나는 시각을 오후 1;30분으로 하고 만나는 장소는 도서관 1층 로비로 하여 2시부터 관람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자세한 것은 이번 금요일 법원에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보시면 느낌도 다양해지고 소감도 다양해 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10.8.9.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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